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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번역] 황청직공도-송거로(宋腒朥, 타이 송클라) 사료 번역

황청직공도 권1


송거로(宋腒朥, 만주어: song gioi lao gurun)



△ <황청직공도>의 송거로 남녀


송거로(宋腒朥)1는 곧 섬라(暹羅: 타이)의 속국(屬國)이다. 그 사람들 중 다수가 경작하고 물고기 잡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다. 성정은 소견이 좁고 급하다. 승려에게 보시하고 코끼리를 기르는 것은 섬라(暹羅)와 비슷하다. 남자들은 머리는 기르고 구레나룻은 자르며 머리는 꿩 꼬리처럼 묶는다. 허리는 한 필의 비단으로 묶는다. 짧은 옷에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 신발과 버선은 신지 않는다. 항상 도검을 찬다. 여자는 상투를 틀고 긴 치마에 어깨에 비단을 두르며 자못 방적하는 법을 안다.


* 각주

1. 송거로(宋腒朥): 지금의 타이 남부의 송클라 주이다. 송클라라는 이름은 말레이어로 “사자의 도시”를 의미하는 '싱고라'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은 송클라 시 근처에 있는 산의 모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곳은 원래 고대 말레이 왕국의 영토였으며, 스리비자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200년에서 1400년까지 송클라는 말레이 왕국 중 랑카수카의 최북단이었고, 18세기 이후 송클라는 태국의 안정적인 종주권 하에 편입되었다.



 


[사료번역] 황청직공도-러시아(오로스) 사료 번역

황청직공도 권1


러시아(오로스, 俄羅斯, 만주어: oros gurun)


△<황청직공도>의 러시아 남녀


러시아(오로스, 俄羅斯)1는 그 땅이 북쪽 끝에 있다. 한대(漢代)의 견곤(堅昆)2과 정령(丁令)3, 당대(唐代)의 힐알사(黠戞斯)4, 골리한(骨利幹)5, 원대(元代)의 아라스(阿羅思)6, 키르기즈(吉利吉斯) 등의 부(部)가 모두 그 땅이다. 명대(明代) 300년 동안에는 중국과 통한 적이 없다.   우리 왕조의 강희(康熙) 15년(1676년)에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 강희 28년(1689년), 내대신(內大臣) 송고투(songgotu, 索額圖)7 등을 보내서 그 사신 효도르(費耀多囉)8 등과 게르비치(格爾必齊) 강9을 경계로 정하였다.10 그 후부터 조공하고 무역하였고, 2년에 1번씩 온다.


그 관리는 머리를 기르고, 삼각의 검은 모직 모자(黑氊帽)를 쓰고, 소매를 뚫은 짧은 옷을 입으며, 가죽신을 신고, 나갈 때는 반드시 검을 찬다. 관리의 부인은 붉은 꼭지가 달린 삼각 모자를 쓰고, 오색의 긴 치마를 입고, 비단으로 짠 소매 없는 짧은 옷을 입는데, 혹은 담비 가죽으로 안을 댄다. 풍속에서는 머리를 자르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며 모자를 벗는 것을 공경함으로 여긴다.


러시아(俄羅斯) 땅은 8도(道)가 있는데,11 ‘스코(斯科)라고 하며, 1개의 ‘스코(斯科)마다, 또한 각기 작은 ‘스코(斯科)'로 나뉘고, 모두 관리를 두어 그 백성과 거처, 성보를 관할하게 한다. 거처는 단지 움막이 있을 뿐이고, 물과 뭍에는 배와 수레 있다. 모전 융단을 입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며, 보리 가루를 주식으로 삼는다. 성격은 자만심이 있고 얻는 것을 탐한다. 부처(浮屠)12를 숭상하여, 국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계절마다 수십일 동안 크게 제사를 드린다. 


*각주

1. 러시아(오로스, 俄羅斯): 청대의 러시아는 대체로 만주어로 '오로스(oros)', 한자로는 '顎羅斯', 혹은 '俄羅斯' 등으로 표기되었다. 17세기 초 러시아가 카자크 부대를 파견하여 본격적으로 극동 시베리아로 진출하면서 흑룡강 유역을 두고 청조와 분쟁을 일으키는데, 처음 청에서는 이들을 만주어로는 '로차(loca)' 한문으로는 '羅刹'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이 표기는 대체로 극동으로 파견된 카자크 부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에서도 청의 요청으로 효종 때 두 차례 흑룡강 유역의 카자크 부대에 대한 원정을 단행하고, 이들 카자크에 대해서 '나선(羅禪)'이라고 불렀다. 강희제 시기 흑룡강 유역을 두고 모스크바의 러시아 차르국과 외교협상을 벌이면서, 러시아 차르국을 '오로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2. 견곤(堅昆): 지금의 키르기즈스탄 지역의 고대 유목국가. 기원전 2세기 경 흉노에 의해 복속되었다.


3. 정령(丁令): 지금의 바이칼 호 주변에 살았던 유목민 집단. 역시 기원전 2세기 경 흉노에 의해 복속되었다.


4. 힐알사(黠戞斯): 당대에 키르기즈 인들을 '힐알사'로 표기하였다.


5. 골리한(骨利幹): 당대에 바이칼 호 일대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골리한'으로 표기하였다.


6.  아라스(阿羅思):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공국들을 가리킨다. 12세기~13세기 몽골제국의 서방원정을 통해 킵차크 칸국에 병합되었다.


7. 송고투(songgotu, 索額圖): 1636~1703년. 정황기 만주 허서리(赫舍里) 씨 출신. 아버지는 홍타이지 시기부터 청조에 복무했고, 강희제 즉위 초 보정대신 중 하나였던 소닌(sonin, 索尼)이고, 그의 조카는 강희제의 첫 황후 효성인황후이다. 1668년 이부 우시랑을 역임하고 1669년 오보이를 제거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워 국사원 대학사가 되었다. 1689년 전권대신으로 네르친스크에 파견되어 골로빈 등의 러시아 사절과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1701년 황태자 윤잉을 보좌하면서 '태자당'을 이끌다가, 1703년 불경과 탐악을 죄목으로 구금되어 옥사하였다.


8. 효도르(費耀多囉): 효도르 알렉세이비치 골로빈(Фёдор Алексеевич Головин; 1650 – 1706)을 말한다. 표트르 대제 시기 행정부 수반 및 장군을 역임하였고, 1689년 청과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9. 게르비치(格爾必齊) 강: 흑룡강의 지류 중 하나로 고르비차 강이라고도 한다. 스타노보이 산맥에서 실카 강, 아르군 강으로 흐르는 강이다.


10.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을 말한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흑룡강의 지류 아르군 강과 고르비차 강, 외흥안령을 양국의 경계로 삼고, 알바진 요새는 파괴한다. 2. 월경자는 국적에 따라 해당 국법에 따라 처리한다. 3, 양국 민간인의 통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등이다.


11. 실제로 표트르 대제 때 러시아 전역을 8개의 구베르니야로 나누었다.


12. 부도(浮屠): 고대 중국에서부터 '부처' 혹은 '불교'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다만 실제 그 당시 러시아는 동방정교회를 신봉하고 있었다.




[사료번역] 황청직공도-하란국(네덜란드) 사료 번역

황청직공도 권1.

하란국(荷蘭國, 만주어: ho lan gurun)


△ <황청직공도> 중 하란국 남녀

홀란드(荷蘭)1는 또한 홍모번(紅毛番)2이라고 부르며, 그 땅은 불랑기(佛朗機)에 가깝다. 명 만력 연간에 자주 큰 함선을 타고 향산(香山)의 오문(澳門, 마카오)에 정박하여 공시(貢市)를 요구하였지만 달성하지 못하자, 복건으로 들어와서 팽호(彭湖)에 웅거하면서 대만(臺灣) 땅을 침입하였다.3 우리 왕조의 순치 10년(1653년)에 처음으로 광동을 통하여 공물을 통하였고,4 강희 연간 초에 대군을 도와 대만을 정복하는 데에 공이 있어서,5 이후 공시(貢市)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이 조공을 바치는 길은 복건을 경유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홀란드 국 사람들은 검은 모직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는데, 사람을 마주치면 모자를 벗어 옆구리에 끼는 것을 예의로 여긴다. 비단 수를 놓은 융의(絨衣)를 입으며, 항상 채찍을 손에 쥐고 허리에 칼을 찬다. 홀란드 국의 부녀자들은 푸른색 두건으로 머리를 덮고 목에는 주석을 두르며, 어깨에는 무늬없는 비단으로 된 두건을 걸친다. 창의(敞衣)를 입는데 가슴을 드러내고, 긴 치마를 입으며, 붉은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는다. 그 외에 가라파(咖喇吧)6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 곳은 남양(南洋)의 도회지인데, 그 이름을 분석하면 스웨덴의 것이라고도 하고, 잉글랜드 것이라고도 한다.

*각주
1. 홀란드(荷蘭): 지금의 네덜란드를 말한다. 네덜란드는 '홀란드(Holand)'라고도 하는데, 이로 인해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네덜란드를 '하란(荷蘭)', 화란(和蘭, 일본어로 오란다)이라고 표기한다.

2. 네덜란드 인들은 명말부터 동아시아에서 교역을 했는데, 외모가 붉은 수염을 지녔다고 하여, '홍모(紅毛)', '홍이(紅夷)'라고도 하였다.

3. 1624년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팽호 열도와 대만 남부를 점거한 사건을 말한다. 이 시기 대만섬을 네덜란드령 포르모사(Formosa)라고 부르며, 네덜란드의 대만 지배는 정성공(鄭成功) 세력의 공격을 받아 동인도 회사가 대만에서 완전 철수하는 1662년까지 지속되었다.

4. <청세조실록>에 의하면, 청과 네덜란드가 처음 통교하기 시작한 것은 순치 13년(1656년)부터이다.

5. 청이 정성공 일가가 지배하는 대만을 공격할 때 네덜란드에서는 선박을 제공하여 청의 대만 정벌을 지원하였다. 정성공 세력에 의해 대만에서 세력을 잃은 네덜란드로서는 청의 대만공격을 지원함으로써 대만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대만 및 복건 등지의 교역을 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으려 한 것이다.

6. 가라파(咖喇吧):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이다.

[사료번역] 황청직공도 유불국 사료 번역

황청직공도 권1

유불국(柔佛國, 만주어: ju fu gurun)

△ <황청직공도>의 유불국 남녀 

유불국(柔佛國)1는 서남 바다 가운데에 있다. 그 땅은 동서로 축산(竺山)이 있다. 풀을 덮어 집을 삼고, 나무를 열지어서 성을 만든다. 땅에서는 곡식이 나지 않아서 항상 인근 땅에서 교역한다. 불교를 숭상하며, 몇 개월 동안 재계하다가, 별이 보이면 밥을 먹는다. 칼로 줄풀과 갈대 잎을 그어서 문자를 삼는다. 혼인할 때는 또한 문벌을 따진다. 남자는 머리를 자르고 맨발이며, 모자가 마치 주발을 엎은 듯 하고, 구리빛 실로 옷을 깁고 하얀 베로 덮는다. 옷과 바지를 만드는데 모두 짧으며, 허리에 꽃 수건을 두른다. 몸에서 병기를 놓지 않는다. 부녀자들은 머리를 묶어 아래로 드리우며 맨발이다. 짧은 옷과 긴 치마를 입으며, 어깨에 비단을 걸치는데, 술루 술탄국(蘇禄)과 비슷하다. 방석을 짜는 일을 잘한다. 


*각주


1. 유불국(柔佛國): 16세기 중반 현재의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에 건국된 조호르 술탄국을 말한다. 1528년 믈라카 술탄국의 술탄 마뭇 샤의 아들 알라우딘 리아얏 샤 2세에 의해 말레이 반도 남부의 조호르에 건국된 술탄국이다. 조호르 지역은 1511년 포르투갈 세력의 믈라카 점령 이전까지는 믈라카 술탄국의 일부였으나, 믈라카 함락 후에는 구 믈라카 술탄국 세력들의 새로운 정치적 중심이 되었다.


[사료번역] 황청직공도-문채국(보르네오 브루나이) 사료 번역

황청직공도 권1


문채국(汶菜國, 만주어: wen tsai gurun)


△<황청직공도> 의 문채국 남녀


문채국(汶菜國)1은 당대(唐代)의 파라국(婆羅國)2이다. 동양(東洋)이 끝나고 서양(西洋)이 시작하는 곳이다. 명 영락 연간, 자주 입공(入貢)하였고, 전설에 의하면, 그 두목은 복건 사람(閩人)으로 정화(鄭和)를 따라갔다가, 그 땅을 점거했다고 한다.3 산을 등지고 바다를 앞에 두고 있다. 불교를 숭상하여, 죽이는 것을 싫어하고 보시하는 것을 좋아하며, 돼지를 먹는 것을 금한다.4 그것을 위반하는 자가 있으면 죽을 때까지 나무를 베고 등나무 캐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야 한다. 남자는 머리카락을 잘라 진홍색 비단(絳帛)으로 싸고, 턱수염은 밀고 구레나룻은 남기니, 술루(蘇禄)와 비슷하다. 여자는 머리를 풀어헤쳐 어깨에 드리우며, 정수리에 수건을 묶는다. 치마를 입고 맨발로 다닌다.


*각주


1. 문채국(汶菜國): 지금의 보르네오 섬을 점거했던 브루나이 술탄국이다. 말레이 인들이 뿌리였고, 서기 7세기경에는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의 제해권을 장악한 스리위자야 제국의 속국이었다가. 이후 14세기 마자파힛 왕조의 속국이 되었다. 15세기에 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브루나이는 독립국이 되었고, 보르네오 섬의 대부분을 점거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면서 점차 세력이 쇠퇴하였다.


2.  파라국(婆羅國): 지금의 보르네오 섬이다. <신당서><남만열전>에 의하면, 669년(당 총장 2년) 사신을 보냈다고 한다. 보르네오 사람들은 6~9세기까지 중국과 해상 교역을 하면서 자신들을 '푸니(Puni, 婆利, 渤泥)'라고도 칭하였다고 한다.


3. 실제 정화의 남해 원정 이후 많은 복건성 출신 화교들이 보르네오 섬에 정착하였다. 이 기사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4.  브루나이는 15세기 이후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이슬람 관습을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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