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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匈奴)와 훈(Hun)의 관계에 대한 생각 내륙아시아사


  1. 야만의 대명사 흉노와 훈

 

  
  흉노와 훈

  유목민족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그렇듯이 흉노와 훈은 동서의 역사에서 야만의 대명사로 꼽힌다. 흉노는 지속적으로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의 농민들을 괴롭히는 오랑캐로 인식되고 있고, 훈 족은 서기 3세기 경, 유럽에 등장하여 게르만의 대이동을 초래하고 결국에는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는 주범으로 인식된다. 흉노와 훈 모두 문명국가들과 대립하는 야만으로 대표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유목민들에 비해 군사적으로 열세였던 정주민들의 시각이 투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흉노와 훈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유목민들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데 문제가 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목민들은 자신들의 문자로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통 그들의 역사를 남기는 것은 정주지역에 살았던 역사가들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이다. 현대에 와서 고고학이 발전됨에 따라서 유목민족의 역사, 사회구조를 좀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자료로 인해 유목민족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유목 민족에 대한 가설들 중에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어 온 것이 흉노와 훈의 관계이다.


 
2. 흉노와 훈의 관계에 대한 학설들
    
   흉노와 훈의 관계에 대한 논란은 이미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드 기네는 중국의 사서와 로마, 비잔티움의 사서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흉노와 훈의 동일설을 주장하였다. 흉노와 훈의 발음이 유사하고 기원후 1세기 흉노의 패권다툼에서 밀려난 북흉노의 선우의 후예들이 지금의 헝가리 지역으로 도망쳐와서 훈 족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기원전부터 로마의 역사가들이 중앙아시아의 흉노를 훈이라고 인식했다는 점 역시 드 기네의 학설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드 기네의 학설은 현재까지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흉노와 훈 동족설에 대한 반론도 많다. 우선 흉노가 기마민족이라고 해도 과연 동유럽 일대까지 이동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훈과 흉노는 문화적으로도 상이했다는 점이 제기된다. 흉노는 궁려(穹廬-게르) 생활을 한 것과 달리 훈은 소가 끄는 수레를 끌고 이동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흉노-훈 비동족설을 들고 있는 학자들은 흉노와 훈이 전혀 다른 민족임을 그들의 주요 논거로 들고 있다. 훈은 서북 우랄지역의 우그르(Ugr) 족이고 흉노는 알타이 계열의 몽골로이드라는 것이다. 따라서 훈과 흉노는 전혀 다른 민족적인 기원을 갖기 때문에 서로 상관설이 없다는 것이다.

 
3. 흉노-훈 관계 학설의 오류- 흉노가 과연 '민족'이었나?

  흉노-훈 동족설과 비동족 설은 나름의 탄탄한 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설 모두 잘못된 전제를 내세운 가설들이라고 생각된다. 즉 흉노와 훈은 서로 상이한 개념을 가진 용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흉노'에 대한 잘못된 개념 인식은 이러한 논란을 끝없이 재생산 하고 있다. 그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흉노'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유목민의 역사를 인식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다. "~족(族)" 을 붙이는 버릇이다. "흉노족", "돌궐족", "몽골족" 등 유목민들을 인식하는 단위로 "족"이라는 단위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족" 단위로 유목민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흉노", "돌궐", "몽골" 등은 단일한 민족((nation)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인구를 단일한 단위로 묶기 위한 방편이었던 점을 염두해두자.


   "흉노" 역시 처음에는 씨족(clan) 부족(tribe)의 개념이었을 것이다. 흉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중국 전국시대 중기인데 이 시기 흉노는 지금의 오르도스(Ordos)와 고비사막 이북에 분포한 부족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이러한 흉노의 개념이 변화한 것은 약 기원전 1세기 초부터였다.


   기원전 1세기 초 묵특(冒頓) 선우가 집권하면서 흉노는 동호, 월지, 견곤, 정령 등을 병합하였다. 이런 병합 사업을 통해서 흉노는 더 이상 단일한 부족의 명칭이 아니라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여러 세력을 병합한 국가(state)의 명칭이 된 것이다. 이제 흉노에는 흉노인들 뿐만 아니라, 오환, 선비, 철륵, 돌궐 등의 다양한 유목세력이 공존했다고 보면된다. 이러한 부족-국가 개념의 변화는 흉노 뿐만이 아니라 돌궐, 몽골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중국 사서들에 등장하는 '별종(別種)' 이라는 문제이다. 중국사서에는 이러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돌궐은 흉노의 별종이다."
"선비는 흉노의 별종이다."

  별종이라는 것은 발해의 건국세력을 두고 한국학계와 중국학계 사이에서 첨예한 논쟁을 벌이는 단어인데, 여기서 별종이라는 것은 중국 측이 유목세력의 기원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어이다. 별종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늠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겠다. 즉 돌궐이나 선비는 흉노라는 거대한 국가에 포함되었던 세력이었지만, 흉노라는 국가가 쇠퇴하면서 그 영향력 하에서 벗어난 세력인 것이다. 

  흉노와 훈의 관계 역시 이러한 관점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흉노와 훈이 진정 같은 계열의 유목민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가설은 흉노의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가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훈의 기원이 된 세력은 한 때 흉노라는 유목국가의 영향력 안에 있었던 유목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위치는 대략 알타이 산맥 서쪽에서 카스피해 연안 일대에 이르는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흉노의 직접지배는 받지 않았지만, 흉노국가의 영향력 안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원 전 1세기를 기준으로 해서 흉노 국가가 남흉노, 북흉노로 점차 분열되고 흉노국가를 구성하고 있던 세력들도 독립을 하면서 이들 국가도 흉노의 영향력을 벗어났을 것이고 또한 동부로부터 북흉노의 잔여세력도 흡수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 훈이라는 부족명은 어떻게 볼 것인가? 가장 가능한 가설은 훈 족이 흉노의 이름을 자칭했을 가능성이다. 흉노의 영향력은 유목사회에서 상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훈이 흉노의 영향력 하에 들었던 세력이었다면 더더욱 흉노의 이름을 자신들의 부족 명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흉노국가의 영향력이 미친 지역은 대략 대흥안령에서부터 파미르 고원 일대, 카스피 해 이동지역 정도라고 추측된다. 당시는 국경 개념이 없었고 초원 스텝 지역에서 발흥한 국가들은 그 성장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본다.

  흉노와 훈의 관계의 논란에서 새롭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흉노'라는 역사적 개념이다. 흉노는 단일한 민족의 개념이 아니라, 초원 유라시아의 다양한 유목세력을 통합한 '국가'의 개념에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기존의 흉노와 훈의 관계는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훈이 흉노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은 세력일 가능성은 높지만 동일한 민족이라는 가설은 성립되기 힘들 것 같다.

덧글

  • DreamersFleet 2010/12/24 14:21 # 답글

    18세기에 활동했던 에드워드 기번도 흉노와 훈이 같다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펼치죠. 이후에 좀더 조심스런 할설이 등장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 첫걸음 2010/12/24 14:56 #

    예. 17세기 이후 청으로부터 유럽으로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게 되면서, 프랑스 계몽주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중국 문헌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드 기네의 경우나 기번의 경우도 중국 문헌과 서구의 문헌들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는 문헌학에 국한되어 있고 중국문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이 활발해지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초원 유라시아 문화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와 문헌학적 연구가 병행되면서 기존 흉노와 훈의 동족설에 대한 반론이 제기됩니다. 특히 러시아의 학자들의 경우, 흉노의 무덤 등을 발굴하면서 훈의 민족계열과 문화가 흉노의 그것과는 상이하다는 이론들을 제시하게 되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런 두 가지 연구가 전제조건에서 조금은 잘못되었다고 본다는 거죠. 흉노라는 개념은 단일한 민족 개념이라기보다는 여러 부족이 합쳐진 거대한 유목국가의 개념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전제를 두고 본다면 흉노가 훈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일한 민족이었다고는 보기 힘들다라고 생각합니다.
  • DreamersFleet 2010/12/24 15:04 #

    제가 보기에도 그렇더군요. 기번은 대체로 중국문헌 중에 "자치통감"을 인용하면서 싱누(匈奴)를 그냥 Hun으로 번역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이들이 같은 민족이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안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유목민인데 왜 그게 필요하냐는 식이더군요. 그냥 스키타이든 뭐든 풍습이 비슷한데 주목하는 것 같더군요. 굳이 구별은 몇몇 기록된 단어로 유럽어족이다 아시아족이다 정도고요.
  • 첫걸음 2010/12/24 15:20 #

    사실 유목민족에 대한 연구는 동양도 그렇고 서양도 비교적 형편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서 유목민족에 대한 학계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좀더 유목민족의 역사를 깊이있게 연구하려고 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개념 자체도 정주인이 쓴 역사를 통해서 유목민의 역사적 개념을 설정하려고 하니, 유목민들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겠죠...

    최근들어 어족 등으로 묶는 등 인류학적인 연구로 유목민들을 연구하려는 경향도 많은데, 문제는 이러한 연구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학 따로 인류학 따로 고고학 따로 이렇게 논다는 거죠... 좀 총체적으로 유목민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사실 제가 대학생인데 유라시아 초원 역사를 연구하는 게 목표입니다 아는 형 추천으로 이글루스 블로그 개설하고 한번 글을 올렸는데 드림 님께서 부족한 글에 첫 댓글을 달아주시고 감사합니다 ^^
  • DreamersFleet 2010/12/25 10:45 #

    전공자라 저보단 많이 아시는군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포스팅 부탁드립니다. 혹시 요즘 초원 역사를 한국사랑 연관시키는 얘기들이 많이 유행되어 단순히 그런 탓이나 유행 때문에 그것을 전공하시려면 저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말리고 싶습니다만, 그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은 만큼 노력할 수록 새로 밝혀지는게 많겠죠.^^

    그리고, 제가 앞서 자치통감 이라 했던 것은 정확히 그 요약본으로 보이는 "통감강목"이란 책입니다. 기번이 프랑스의 연구를 많이 참조했습니다. 말씀하신 드 기네도 나오네요. 그리고 선우(單于)를 Tanjou로 옮겼네요.
  • 첫걸음 2010/12/25 11:25 #

    감사합니다. 사실 저 역시 요즘 한국사와 유목민의 역사를 굳이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시각을 경계합니다. 소위 환빠들이 주장하는 것들 말이죠.. 뭐.... 환빠들은 모든 민족들을 우리 민족으로 소급하려니까 뭐....... 황당하죠. 그런 식으로 주장하면 아메리카 인디언도 우리 동족이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푸니 2010/12/25 09:53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일겅ㅆ습니다.
    니콜라 디 코스모의 <오랑캐의 탄생>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흉노가 특정 민족 이름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유목민을 야만으로 취급했던 건 중국인의 정치적 편의를 위한 '매도'라는 것,
    만리장성은 그 야만인들로부터 중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그들의 영역을 야금야금 침범해 중국 것으로 만들고 확정짓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야만으로 매도했던 유목민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으며 심지어는 조공도 바쳤다는 것 등....

    블로그를 막 시작하셨군요.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 첫걸음 2010/12/25 11:21 #

    네. 고맙습니다. 사실 유목민들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사서들을 꼭 공부해야 하는데, 중국 사서의 경우 중국의 중화의식에서 비롯된 역사관에 입각해서 저술되는 경우가 많지요..그런데 그런 중국의 의식 속에는 사실 유목민에 대한 농경민들의 피해의식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시각의 글들이 많죠...
  • Kana 2010/12/28 23:30 # 답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첫걸음 2010/12/28 23:40 #

    Kana 님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실 유목민들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저는 역사학도로써 가능한 한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납득이 갈 수 있게 유목민의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데, Kana님이 재미나게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 모닝스타 2011/05/10 00:52 # 삭제 답글

    지난달에 양평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텐트는 배낭에 넣어 등에 지고 다녀왔다.
    누군가 이름을 묻길래 "김영진"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좀 멀리 춘천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길이 멀어서 텐트는 자전거 뒤에 매어서 다녀왔다.
    또 누군가 이름을 묻길래 이번엔 간단하게 "영진"이라고 대답했다.

    세월이 흘렀고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드세다.
    "김영진족"과 "영진족"은 다르다.

    1. 일단 이름이 비슷하긴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2. "김영진족"은 양평쪽에 출몰하는데, "영진족"은 춘천쪽에서 나타난다.
    3. "김영진족"은 텐트를 배낭에 넣어 등에 매고 다니는데, "영진"족은 자전거 뒤에 싣고 다닌다.

    그러므로 "영진족"이 "김영진족"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은 세력일 가능성은 높지만 동일한 민족이라는 가설은 성립되기 힘들 것 같다.
  • ...... 2012/07/30 01:24 # 삭제

    수준 봐라 ㅉㅉ
  • ^^; 2015/07/21 20:50 # 삭제

    사실여부를 떠나 상당히 흥미로운 비유^^
  • ㅁㄴㅇㄹ 2011/11/29 04:00 # 삭제 답글

    저도 이 글에 공감합니다. 개념없는 일부 국빠들이 자꾸 흉노=훈이라고 단정지으며 어떻게든 우리민족과의 연관성을 지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유목민족의 특성을 고려해서 훈이 흉노에게 영향을 받은 세력일 가능성은 높지만 동일 민족일 가능성은 미미하다고 보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합리적인 결과 도출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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