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吐蕃, 티베트 최초의 제국(2)-토번제국의 태동 동아시아사

2. 토번제국의 태동

   (1) 티베트의 지리적 환경

△ 티베트 지리

  
  토번제국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토번제국이 등장하였던 티베트의 지리적 배경, 토번제국 이전의 티베트의 역사 등을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서장(西藏), 오사장(烏沙藏), 토번(吐蕃), 서번(西蕃)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티베트 지리적 범주는 좁은 개념의 티베트와 넓은 개념의 티베트로  나눌 수 있는데 좁은 범위의 티베트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티베트 자치구, 혹은 서장 자치구를 말하는 것이고, 넓은 범위의 티베트는 티베트 자치구 외에도 청해성 전역, 사천과 운남성의 서쪽 지역, 지금은 인도에 포함된 라다크 지역 일대까지 포함하는 범위이다. 현재 14대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티베트의 자치 혹은 독립을 꾀하는 이들은 넓은 의미의 티베트 개념을 사용하고 있고 토번 제국도 넓은 의미의 티베트 지역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 사용하는 티베트 개념 역시 넓은 의미의 티베트가 될 것이다.

  티베트의 지리적 환경을 보자면, 주변과 완벽히 격절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티베트 지역 자체가 기본적으로 3~4,000m의 고원지대이고 서쪽과 남쪽은 파미르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이 감싸 안으면서 인도 지역과의 교통을 차단하고 있고, 북쪽은 곤륜 산맥 뿐만 아니라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이 겹겹이 막아서서 초원지대와의 교통을 막고 있다. 그나마 외부와의 교통이 유리한 지역은 청해성 지역과 사천, 운남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후에 토번왕조의 발전방향이 청해, 사천, 운남 지역에 집중되면서 당과 충돌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이러한 티베트의 폐쇄적 지리는 티베트 인들이 중국, 인도, 몽골 초원 지대와는 별개의 문화권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티베트 인들은 위의 지도와 같이 티베트를 크게 5등분으로 구분한다. 서부의 아리(阿里), 중부의 짱(藏), 위(衛), 동부의 캄(康), 지금의 청해성인 북동부의 암도(安多)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역들 중에서 티베트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는 중부의 짱과 위라고 할 수 있다. 짱을 흔히 후장(後藏), 위를 흔히 전장(前藏)이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짱은 판첸라마의 직할지이고 위는 달라이라마의 직할지이기 때문에 구분을 하는 것이다.  토번제국의 중심지 역시 짱과 위라고 할 수 있다.

 

△ 티베트의 유목민


△ 야크

 
  티베트는 고원지대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농업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고 주로 유목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이 또한 티베트 중심지역에서는 하기가 힘들고 북쪽과 남쪽의 산악지대와 북동부의 청해, 동쪽의 사천, 운남과 접하는 고원지대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티베트의 유목민들이 기르는 주요 가축은 야크이다. 야크는 티베트 산간에서 서식하고 티베트 인들은 그 털과 고기, 유즙을 통해 주요 의식주를 해결하기 때문에 야크는 티베트 인들에게 뗄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또한 청해와 캄 일대는 예로부터 명마의 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토번제국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중국과의 전쟁에서 기병전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티베트에서 전혀 농업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티베트 일부 지역은 농경이 가능하다. 특히 위 지도에서 히말라야와 평행을 이루며 티베트 남부를 관통하여 벵갈 만으로 흐르는 야루장포 강 중류 일대는 티베트에서도 토지가 비옥하여 농경이 발달한 곳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토번왕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후술하겠지만 토번왕조가 티베트의 다른 국가들을 병합하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원인 중에는 토번왕조의 중심지가 다른 지역보다 농경이 발달한 지역이란 점도 들 수 있다.


(2) 고대 티베트 역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고대 티베트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현재로서는 그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고대 티베트, 특히 토번 제국 이전의 티베트의 역사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다양한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료의 문제가 크다. 토번왕조 이전의 티베트 역사를 다룬 문헌 사료는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 다량의 고대 티베트 문헌들이 발견된 돈황 막고굴의 장경동


  우선은 티베트 내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과 신화이다. 티베트 내의 전설과 신화는 토번왕조 시기까지 구전되다가 토번왕조 이후 티베트 문자가 발명되면서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역사서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오렐 스타인, 폴 펠리오 등의 서구 유물 수집가들에 의해 돈황 막고굴에서 다량 발굴되었다. 고대 티베트 문헌들은 고대 티베트 역사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신화적 요소와 불교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점이 문제이다.

  또한 티베트와 인접하였던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도시 국가들의 기록들이 있다. 특히 타림 분지 남쪽의 호탄에서 다량으로 발견된 문서들은 티베트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호탄 지역이 예전부터 티베트의 부족 국가들과 많은 접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 티베트의 부족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측 사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기>부터 시작하여 <신당서>까지 수량이 다양하여 시대 별로 티베트 일대의 부족들의 동향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이기는 하지만 주의할 점은 중국 왕조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누락된 부분도 있다는 점이 단점이다.

  고대 티베트의 역사는 이 3가지 종류의 문헌사료들과 티베트 등지에 남아 있거나 발굴되는 유적, 유물 등의 고고학적 사료를 비교 분석하면서 추론해내는 수 밖에 없다. 특히 토번 왕조 이전의 역사는 사료의 수도 다소 부족하고 그나마 사료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학자마다 다양한 학설들을 내놓고 통일된 이론이 없다. 다음 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연구성과와 사료들을 바탕으로 토번제국 이전까지의 역사를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3) 토번제국 이전의 티베트 역사

△ 티베트 인들의 구성요소들


  우리가 흔히 티베트 인, 혹은 장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들이 있다. 우선 티베트 자체에서 다양한 부락들이 탄생했다는 내부기원설, 지금의 청해와 감숙일대에 거주하던 유목 세력인 강과 지금의 사천 일대에 있던 저 인들이 티베트 내부로 이주했다는 강저설,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아리안 계가 이주해왔다는 설, 인도-버마 계의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이주해왔다는 설 등 다양하다. 그 중에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설은 강저설을 기초로 한 혼합설로 강인과 저인이 티베트 내부로 이주해 와서 기존의 티베트 토착세력과 결합하면서 티베트 인의 기초를 형성하였고 그 위에 다양한 인구들이 이주하였을 것이다.

  토번 왕조 이전에 티베트 인들은 통일된 국가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고 부족 단위의 생활을 영위하였다고 생각된다. <신당서> 216. <토번열전 상>에는 "토번은 본래 서강에 속하는데, 모두 150여 종의 부락이 있어 황하, 황수, 민강 사이에 흩어져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대 티베트 역사서들도 토번 제국이 성립되기 이전의 티베트에 다양한 부족들로 분열되어 적고 있다.

  고대 티베트의 역사서들과 전승들에 의하면 이러한 다양한 부족들이 서로 전쟁을 치열하게 하면서 점차 3개의 왕국으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3개의 왕국은 티베트 서부인 아리 지방을 중심으로 한 샹숭(Zhangzhung), 티베트 동부를 중심으로 한 숨파(Sumpa), 야루장포 강 일대에서 발생하여 토번제국의 기초가 된 야룽(Yarlung)이다. 사실 이 국가들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라기 보다는 부족들이 연맹한 형태의 연합체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대 티베트 문헌에 의하면 샹숭과 숨파의 경우 토번 왕조 성립이전부터 티베트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녔다고 한다.

  샹숭은 중국 사서의 양동(羊同) 혹은 상웅(象雄)과 일치하여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샹숭은 일찍이 고대 티베트 문화의 중심으로 티베트 고대 종교인 본교(Bon, Bonpo)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본교는 원시의 정령신앙 즉 애니미즘을 기반으로 한 신앙으로 고대 티베트 문화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불교가 티베트 사회에 전래된 이후에도 불교와 경쟁, 결합하면서 티베트 특유의 불교를 창출해 낸다. 또한 샹숭은 인도문화와 중국문화,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접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였는데,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본교의 승려들이 문자를 창제했고, 이 문자는 토번제국 이후 창시된 티베트 문자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숨파는 <수서><서역전>에 등장하는 여국(女國)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수서>48. <서역전>에 의하면, "여국은 총령(蔥嶺: 파미르 고원) 이남에 있는데 대대로 여인이 왕이 된다. 여왕의 성은 소비(蘇毗)이고 자는 말갈(末鞨)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호탄에서 발견된, AD 3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 문서들에 의하면, Supiya가 등장하는데, 학자들은 대게 소비와 Supiya가 티베트의 숨파와 일치한다고 보고 있다. 티베트에서 일처다부제 등 모계 사회의 풍속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숨파가 여인국이었다는 점은 설득력 있다고 보인다.
 

 

  (4) 야룽왕조의 발전
 

△ 야룽왕조의 영역

  고대 부족단위에서 벗어나 티베트 고원 전역을 포괄하는 토번제국을 건설한 것은 야룽 부락이었다. 야룽 부락은 야루장포 강의 지류이자, 라싸의 동남쪽인 야룽 계곡에 그 본거지가 있었다. 야룽 역시 다른 티베트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조그만 부락 단위로 시작하다가 6~7세기 점차 인근 부락을 병합하면서 거대한 토번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 토번제국의 시조라고 알려진 냐치찬보

 토번왕조, 즉 야룽왕조의 시작은 사료마다 차이를 보인다. 중국 측 사료라고 할 수 있는 <구당서> <토번전 상>과 <신당서><토번열전 상>, 당나라 두우가 쓴 <통전>의 기록은 크게 2가지 기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남량의 독발리록고(禿髮利鹿孤)의 후손들이 티베트로 이주하여 여러 강인들을 병합하고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고(<구당서>,<신당서>, <통전>), 다른 하나는 골제발실야(골提勃悉野)라고 불리는 영웅적인 인물이 토번을 건국했다는 것이다.(<신당서>,<통전>)  

  티베트의 전승과 고대 기록에 의하면 야룽왕국의 시작은 냐치찬보(gNyakhri-bTsanpo, 赤贊普)라는 인물에 의해서 시작된다. 냐치찬보는 하늘에서부터 야룽계곡으로 내려왔는데, 야룽 계곡에서 살던 부족들의 장로들이 어깨에 메고 마을로 데려와 지도자로 삼았고 '찬보(贊普)'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그후 야룽계곡의 윰프라캉에 궁전을 짓고 야룽 부락을 통치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당과 토번이 회맹관계를 맺고 세운 <장경회맹비문(長慶會盟碑文)>에 의하면 냐치찬보가 육모우부(六牛部)의 수령이 되어 찬보골제발실야라고 추존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신당서>와 <통전>의 기록과 비슷하다.

  냐치찬보가 야룽왕조를 건국한 시기를 두고는 학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대체로 BC129년으로 잡고 있으며, 티베트 문헌과 전승에 의하면 냐치찬보 이후 토번제국이 붕괴하는 842년까지 42명의 찬보가 야룽왕조를 이끌었다. 우리가 잘 아는 송첸캄보는 33대 찬보이다. 야룽왕조의 42대 찬보 중 냐치찬보에서부터 30대 찬보까지는 실제 역사 상의 인물이라기보다는 거의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여겨지고 31대 찬보부터 역사적 인물로 본다.  

 
△ 야룽왕조의 최초 본거지였던 윰프라캉

  야룽계곡의 작은 부락으로 시작된 야룽왕조는 원래는 세력이 미약하여 인근의 샹숭과 숨파에 병합되기도 하였으나,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31대 찬보인 다리냐세(達日司, sTari gNyangzigs) 치세 때 급격히 발전하게 된다. 본래 야룽 부락은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다가 이 시기에 이르면 숯을 이용하여 금속을 단련할 수 있었고, 농업기술 또한 발전하여 나무 쟁기와 가축을 이용한 경작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야룽부락이 발전하는 원천이 되었고 야룽 부락은 점차 인근 부락들을 병합하면서 티베트 사회에서 주도적인 세력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대외적 발전은 32대 찬보 남리송첸(南日松贊, gNamri Srong btsan)에 의해서 더욱 가속화된다. 남리송첸은 620년 내란으로 분열되어 있던 숨파를 복속시키면서 티베트 고원 동북부에서 영향력을 장악한다. 이후 샹숭과 티베트 고원 서부의 부락들을 영향력 하에 두면서, 청해 일부와 사천 운남 서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야룽 왕조의 강역에 포함되었다. 또한 이 시기 히말라야 건너편 네팔 왕국의 왕이 내란으로 남리송첸에게 의탁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은 토번 제국과 네팔이 혼인동맹을 맺는 계기가 되고 네팔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야룽왕조는 여전히 부족 연맹 체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남리송첸이 일시적으로 티베트 대부분을 영향하에 두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일시적인 것이라서 야룽왕조는 곧 각 부락들의 반란에 직면하였다. 샹숭과 숨파는 이내 다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는데, 토번 왕조가 이들을 다시 완전 제압하는데에는 약 1세기가 걸렸다. 게다가 남리송첸의 중앙집권화 시도는 야룽 왕조 내부의 귀족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결국 629년 경 남리송첸이 암살되기에 이른다.

  남리송첸에 이어 찬보 위에 즉위한 것은 13세의 송첸캄포(松贊干布, Srong btsan sGampo)였다. 송첸캄포 시기 야룽왕조는 토번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역사상에 등장한다.

<계속>

 *포스팅 후기

 참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학부생인 저로서는 토번왕국 이전의 고대 티베트 관련 자료에 대한 접근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자료들을 제대로 구할려면 돈도 엄청들고 또한 제 실력이 따라줘야 하지만 너무 부족한 것을 인정합니다.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접근하여 공부를 했지만 티베트 고대 역사는 매우 복잡했고 학자들마다 의견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제 이해력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을 여러분이 이해되기 쉽게 풀어내고자 했지만, 아쉬움이 많군요. 

  혹시 독자 여러분 들 중 이분야에 관심이 매우 많고 잘 아시는 분은 제게 지적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배우겠습니다.

덧글

  • 맹꽁이서당 2011/02/08 01:35 # 답글

    주변과 격절된 공간! 칭기스칸 4를 하면서 절실히 느꼈지요..
    아마 그 겜에서 가장 난이도가 있는 나라가 바로 토번이 아닐까 싶습니다 ^^
  • 첫걸음 2011/02/08 08:41 #

    ㅋㅋ 칭기즈 칸 4 잠깐 한적이 있었는데, 중국 공격하다가 지쳐버렸다능 ㅋㅋㅋ 한번 고비사막을 넘어 공격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다가 처참히 깨졌는데 토번이 더 어렵군요..

    사실 몽골 제국 시기에도 토번은 거의 독립을 유지한 몇 안되는 세력이었습니다. 쿠빌라이에게 사천과 운남으로 돌아가는 길을 내주는 대신 토번은 자치를 인정받았죠. 다만 당시 토번은 하나의 통일된 세력이 아닌 여러 사원 세력이 분점하던 시기이죠,
  • 솔까역사 2011/02/08 01:52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자료를 잘 준비해서 알찬 글을 쓰시는군요.
    살기에는 척박하겠지만 사진으로 보기에는 티벳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티벳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y-dna를 분석해보면 일본 조몬인과 같은 D형이 많이 검출된다는 점입니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유형입니다.
    http://kallery.net/index.php?g_clss=forum&g_prcss=thrd&g_tmplt=&g_brd=20&g_thrd=1814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 먼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을 겁니다.
  • 첫걸음 2011/02/08 08:57 #

    감사합니다. ^^ 솔까역사님께서 칭찬해주시니 힘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제한된 자료로 글을 풀어내려니 참으로 갑갑했습니다. 이 부분은 서론에 지나지 않은데 서론에서 너무 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저도 고대 티베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뿌듯합니다,

    아, 저도 사진 찾으면서 티베트 한번 모험삼아 늙기 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링크해 주신 자료 잘 보았습니다. 물론 선사시대에 티베트와 일본 사이에 인종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인적 이동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공동체가 형성하는데에는 인종적 결합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역사적 경험의 공유란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험의 공유가 축적되어 일종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죠.

  • 솔까역사 2011/02/08 13:24 #

    예 맞습니다.
    정체성은 마음 속에 생기는 것으로 혈통과는 별개입니다.
  • 2011/02/08 06: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첫걸음 2011/02/08 09:01 #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 제가 매우 피곤한 상태에서 써서 오타가 난 듯합니다. 정정했습니다. 아, 좀 부끄럽네요. 사실 '로서'와 로써는 제가 글을 쓰면서 항상 헛갈리는 부분입니다. 예리한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부족한 글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단인 2011/02/08 09:58 # 답글

    본문 중에 읽다가 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숨파에 대한 수서 기록에서 '여국'이 총령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총령은 파미르 고원이라고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파미르 고원은 신강 너머의 중앙아시아에 있는 고원지대를 말하는 것일텐데 지도상에 표기된 숨파의 위치는 청해 부근이 아닌지요?

    혹 수서에서 지칭한 총령이란 지명이 꽤 광범위한 것인가요?
  • 첫걸음 2011/02/08 11:11 #

    한단인 님 지적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숨파를 공부하면서 애먹은 부분이 숨파의 위치에 대한 문제입니다. 대개 숨파는 청해호 부분에서 시작된 부족 연맹체라고 합니다. 호탄에서 발견된 3세기 카로슈티 어 문서의 슈피아가 숨파(이것은 어디까지나 학자들의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직접 접하지 못해서요;;)였다고 가정한다면 3세기에는 그 영향력이 타림분지 일대까지 미쳤다고 가정할 수 있고 고대 티베트의 전승으로 본다면, 숨파는 6~7세기에 야루장포 강 유역까지 영향력을 확장했다고도 생각됩니다.

    <수서>에는 '여국이 총령 이남에 있다(女國, 在蔥嶺之南)'고 쓰여 있는데, 총령은 수당 대 때 파미르고원을 이르는 말입니다. 물론 파미르 고원 자체는 지금의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쪽이지만 파미르 이남지역은 티베트 고원을 포함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여국도 티베트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샹숭이나, 숨파, 혹은 초기의 토번이나 모두 부족연맹체 국가였다고 추정되기 때문에 영역의 '가변성' 또한 컸을 거라 짐작됩니다. 즉 부족들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면 영역 역시 금방 축소된다는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수서>에 의하면, 여국이 "개황 6년(586) 사신을 보내 조공했는데, 그 후로는 단절되었다."고 기술되었는데, 만약 여국이 숨파라고 가정한다면 총령 일대까지 숨파의 영향력이 미쳤지만 586년 이후에는 다시 그 세력이 축소되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로서는 이것이 확실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사료 비교를 통한 추측이라는 점이죠.
  • umma55 2011/02/08 10:03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첫걸음 2011/02/08 11:13 #

    부족한 글 칭찬해 주셔서감사합니다 ^^
  • 소하 2011/02/08 12:26 # 답글

    토번은 사료가 너무 난잡하여 들어가기가 무서워요. ^^ 잘 읽었습니다.
  • 첫걸음 2011/02/08 15:15 #

    제 말이 바로 그말이죠 ㅋㅋ "난잡하다"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 無碍子 2011/02/08 21:01 # 답글

    공들여 쓰신글 잘 읽고 갑니다.
  • 첫걸음 2011/02/08 21:12 #

    무애자 님 감사합니다.
  • 고리아이 2011/02/08 23:57 # 답글

    님께서 학부생이라고 하셨으니까 일단 학교 도서관 누리집(홈피)에 들어가 전자자료(이름은 학교마다 달라영, 학술데이터베이스라고도 쓰기도 하고영)를 찾아 보세요
    그곳에서 DBPiA, KISS, e-article, 교보문고 스콜라 등을 찾아 들어가면 국내 주요 학회 논문을 pdf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걸랑영
    그러면, 님께서 걱정하시는 경제적인 문제의 일부를 해결하실 수 있을 듯^___^))
  • 첫걸음 2011/02/09 07:44 #

    고리아이님 감사합니다.

    이미 디비피아 키스 같은 논문검색 사이트에 들어가서 관련자료 다 긁어모았지요ㅋㅋㅋ

    근데 토번에 대한 제가 찾고 싶은 논문은 거의 없더라고요.
  • 고리아이 2011/02/09 21:27 #

    하각 그런가영 ㄷㄷㄷ
  • 고리아이 2011/02/09 00:00 # 답글

    아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이랑 국회도서관도 살펴보세요(모두 회원 가입하심이 좋을 듯)_국가 공공 기관에서 펴낸 자료의 경우 직접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답니다영
  • 들꽃향기 2011/02/09 11:44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역시나 토번의 기원은 참 애매모호한 것 같네요 ㄷㄷ 저만해도 그냥 무난하게 중국측의 입장에서 서강(西羌)의 후예들로만 파악했었는데, 실제과정은 좀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ㅎ.ㅎ
  • 첫걸음 2011/02/09 13:17 #

    <구당서>에서도 토번이 "그 부락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고 묘사되어 있으니 애매모호 한 듯 합니다. 물론 강인들이 티베트 인들의 구성에 있어서 상당히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는 것 같지만, 과연 토번이 서강의 후예들로만 이루어졌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 유유자적 2011/02/10 23:54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토번학에 관심이 깊은 한 역사학자(를 꿈꾸는초심자)입니다.
    제가 이번에 토번을 공부하는데 첫걸음님의 자료를 쓰면 안될련지 질문합니다.


    http://cafe.naver.com/ygsm7.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8362&

    아래 게시물은 제가 쓴겁니다. 만약 제가 첫걸음님의 게시물을 써도 된다면 유혈사태.. 는 아니고 감사드리겠습니다.
  • 첫걸음 2011/02/11 09:38 #

    아. 부족한 글에 관심가져 주시고 감사합니다. ^^ 저보다 그 쪽 분야에 더욱 정통하실 텐데 제 자료를 쓰신다면 저로는 영광입니다.

    제가 지금 글 쓰는데 자료가 부족하고 복잡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유유자적 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부족한 글 관심있게 봐주시면 감사드립니다.
  • 파커 2015/05/30 16:09 # 삭제 답글

    티벳공부중인데 앞으로도 좋은.글.부탁드려요
  • 자유여행가 2015/07/30 09:59 # 삭제 답글

    티베트의 역사를 찾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상세한 좋은 자료로 인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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