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吐蕃, 티베트 최초의 제국(8, 結)- 제국의 붕괴 동아시아사

8. 제국의 붕괴



  8세기가 끝날 무렵, 치송데첸 찬보는 사망하고 토번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찬보의 즉위에 있어서 혼선이 빚어지게 되고 찬보와 귀족들의 갈등이 다시 한번 분출되었을 뿐 만 아니라, 본교와 불교 간의 종교적 갈등으로 제국은 점차 쪼개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모순들이 분출되는 과정 속에서 토번제국의 마지막 찬보 랑다르마가 쿠데타로 인해 암살당하면서 티베트 최초의 제국은 종결된다. 이후 티베트는 수백 개의 소국들과 여러 불교 종파들로 분열된다.

  이러한 분열의 양상은 비단 티베트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7세기, 8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던 국가들이 9세기 동안 비슷한 양상을 띠면서 몰락해갔다. 당은 이름만 유지한 채 여러 절도사들의 번진(藩鎭)으로 분열되다가 결국 주전충에 의해 망하고 몽골초원의 위구르 제국은 카간 위를 두고 내분이 일어나고 결국에는 키르기즈의 침략을 받아 몰락하였다. 요동의 발해도 거란의 침입으로, 한반도의 신라는 호족과 농민반란으로 몰락하였고, 토번과 당 사이에서 이중외교를 펼치던 남조도 몰락하여 대리국(大理國)으로 교체 되었다. 이러한 9세기 동아시아 국가들의 몰락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었고 10세기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1) 무네첸포와 치데송첸의 시대, 그리고 토번-위구르-압바스 조의 대립


 
△ 치송데첸 이후 토번왕조 세계도
  (*오류 수정: 랑다르마의 사망 연도는 869년이 아니라 842년이 되어야 한다)
   


    치송데첸 사후, 토번의 찬보 위는 그의 아들들인 무네첸보(Mu-ne btsan-po, 木奈贊普)와 치데송첸(Khri-ide srong btsan,赤德松贊)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치송데첸 이후 토번 왕실의 계보에 다소 혼선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무네첸보의 재위와 관련된 것인데, 중국 측 기록과 일부 티베트 기록에 의하면 치송데첸의 차남인 무네첸보는 797년에 즉위한 후 1년이 안되어 모후에게 독살되었다고 기록된 반면, 일부 기록은 무네첸포가 804년까지 즉위했으며 귀족과 평민들 간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폈다고 한다. 대체로 학자들은 무네첸포가 1년도 안되어 모후에게 독살했다는 설을 믿고 있다.


△ 토번이 상대한 압바스 왕조의 군대(위)와 위구르 군대(아래)

  무네첸보에 이어 찬보가 된 치데송첸의 시대의 토번제국은 중앙아시아 일대와 타림분지의 패권을 두고 압바스 제국과 위구르 제국 사이에서 국제전을 치르게 된다. 치데송첸 시기 당의 세력이 반란으로 인해 국제적 주도권을 잃은 틈을 타서 하서 회랑 일대를 장악하고 타림분지를 장악한다. 하지만 이런 토번의 상승세도 불안정했다. 초원의 위구르 제국은 치송데첸 말년인 792년 당의 북정절도사를 죽이고 그 관할 지역을 점령하면서 타림분지의 북부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압바스 왕조도 타림분지 서부로의 지속적 확장을 시도하면서 타림분지에 대한 토번-압바스-위구르 3자 간의 갈등 양상이 전개되었다. 또한 남조 역시 토번의 영향력에 벗어나면서 토번은 엄밀히 말하자면 고립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치데송첸은 찬보에 즉위하면서, 이러한 타림분지와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둔 토번-압바스-위구르의 대립양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먼저 전쟁을 일으킨 것은 토번이었다. 801년 토번은 압바스 군대와 격돌하였고 805년~808년 경에는 타림분지의 중심지였던 쿠차에서 위구르 군대와 격돌하였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우선 쿠차를 공격한 토번군은 위구르에게 대패하였다.<구성회홀가한비문 >에 의하면 "(토번의) 사면을 모두 포위하여 일시에 박멸하였다. 시체썩는 냄새가 사람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진동했다.'고 한다. 압바스 조에 대해서는 한때 사마르칸트와 카불 일대까지 그 영향력을 넓혔으나, 812년 혹은 815년에 무슬림 세력에 의해 다시 밀려났다. 물론 압바스 조의 뒤이은 카슈미르 공세에 대해서는 방어를 했으나, 압바스 조와 위구르의 계속된 공세로 토번의 중앙아시아 진출은 다소 어려워졌다.

 
  (2) '마지막 법왕' 치축데첸의 시대와 불교-본교의 대립심화

  817년(혹은 815년 경) 치데송첸이 죽고 그이 셋째 아들 랄파첸(Ralpakan)이 찬보에 오르니, 치축데첸(Khri gsung ide brstan)이다.  치데송첸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는 일찍이 출가를 했고 둘째인 랑다르마와 셋째인 랄파첸에게 찬보 계승권이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랑다르마에게 왕위 계승이 유리했지만, 랄파첸이 찬보에 즉위한 이유는 랑다르마가 본교를 숭상했기 때문이다. 치송데첸 이후 찬보가 불교를 강력히 후원하면서 토번 조정 내에서도 불교를 믿는 신하들이 상당히 많았고, 이들은 불교에 심취한 랄파첸을 찬보로 옹립하였다.

  랄파첸, 치축데첸은 조부인 치데송첸보다도 더욱 강력히 불교를 후원하고 본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펴면서 토번 제국의 '마지막 법왕'으로 인식된다. 그가 티베트 불교 역사에서 행한 중요한 일은 불경 번역에 필요한 표준언어체제를 정비했다는 일이다. 그는 불경 번역에 있어서 산스크리트 어를 표준어로 삼고, 학자들을 초빙하여 산스크리트 어와 티베트 어를 대조한 사전인 마하뷰파티(Mahavyutpatti)를 제작하였다. 이 작업으로 인해 티베트 인들은 그들 자신만의 독립적인 언어로 불교를 이해, 해석하고 불경을 서술할 수 있었고, 불교의 이해도도 높아졌다. 티베트 인들의 불교 삼장(三藏)경전이 번역된 것도 이 시기였다.

 치축데첸의 불교 진흥정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승려를 우대하여 귀족의 지위보다도 높은 지위를 부여하였고 ,승려에게 막대한 토지를 하사하고 평민 7명 당 승려 1인을 부양하게 하였다. 게다가 "승려를 불손한 눈으로 쳐다볼 경우 그 눈을 도려낸다."는 엄혹한 법령도 공포하였다. 치축데첸의 이러한 과도한 불교진흥정책은 당연히 반발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억압당한 본교 승려들은 당연하거니와 승려들을 부양하고 농토까지 빼앗긴 농민, 기존의 기득권을 승려에게 침범당한 귀족들은 당연히 불만을 품었다. 그 결과 불교와 본교 간의 대립은 심화되고 결국에는 치축데첸 자신까지도 암살당하기에 이른다.




 
△ 라싸 죠캉 사원 앞에 세워진 장경 당번회맹비

  치축데첸 시기의 대외관계를 보자면, 타림분지, 하서회랑 일대를 두고 위구르,당과 대립하였다. 치죽데첸은 초기에는 당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820년부터 당에 대해서 공세정책을 펴게 된다. 하지만 토번과 당의 대립에 위구르가 개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비록 위구르는 당에 대해서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약탈을 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꾸준히 화친관계를 맺어왔고 군사적으로도 연합하였다. 토번은 이러한 위구르의 개입에 위기를 느끼고 821년 6월 청새보를 약탈하지만 염주자사 이문열의 방어에 성과를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위구르에게 군사적 위협까지 받았다.   

  위구르에 의해 견제받은 토번은 821년 당에 대한 공세정책을 거두고 당과 회맹관계를 맺는다. 우선 토번이 장안에 사신을 파견한 이후 당의 사신 유원정이 토번 라싸에 파견되어 토번과 회맹을 맺었는데, 그 결과 양국은 다시금 구생관계를 확인하고 전쟁 중단을 선언하였다. 이 회맹은 당 목종 장경 연간에 이루어진 회맹이라 하여 '장경 회맹'이라고 불리며, 이 결과 세워진 회맹비가 라싸 죠캉 사원 앞에 세워져 있다. 이 비는 토번의 초기 역사와 당과 토번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사료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장경 회맹은 당과 토번 간의 8차례 회맹 중 마지막 회맹으로도 유명한데, 장경 회맹을 계기로 화친과 전쟁을 불안정하게 반복하던 토번과 당의 관계가 비로소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과의 관계는 장경 회맹으로 안정된 것에 비해 위구르와의 관계는 상당히 불안정하였다. 특히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지역과 페르가나 일대를 두고 그 접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816년 토번은 위구르의 경계를 침범하였다. 하지만 820년 위구르 군대의 반격을 받고 페르가나 일대를 빼앗긴다. <구성회홀가한비문>에 의하면 "카를룩과 토번을 공격해 정벌하였다. 그 깃발을 찢고 목을 베었다. 도망한 것을 쫓아갔다. 서로 페르가나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페르가나는 토번의 중앙아시아 전진기지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위구르에 의해 페르가나를 빼앗기면서 토번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후퇴해야만 했다.


△ 암살당하는 치축데첸(<티베트, 1만년의 역사>)에서)

  838년 불교를 지나치게 숭상하던 치축데첸에게도 말로가 찾아왔다. 치축데첸의 지나친 숭불정책에 억압을 받고 불만을 품은 본교 파 귀족들이 치축데첸을 암살한 것이다. 그들은 술에 취해 잠든 치축데첸의 목을 꺾어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의 형이자 본교를 숭상하던 랑다르마를 찬보로 옹립하였다. 토번의 붕괴는 랑다르마의 즉위와 함께 성큼 다가왔다.


  (3) 랑다르마와 제국의 붕괴

  불교에 대한 지나친 후원으로 치축데첸은 암살당하고 그의 형(중국 기록에는 아우)이었던 랑다르마(Lang-Darma, 朗達瑪)가 옹립되었다. '랑다르마'는 그의 별명일 뿐 실제 이름은 다르마이다. '랑'이란 티베트 어로 소라는 뜻으로 즉 랑다르마란 '소같은 다르마'라는 뜻이다. 이러한 별명으로 보아도 티베트 인에게 랑다르마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현재까지도 티베트 인들은 랑다르마를 마라, 즉 악마의 화신으로 믿고 있다.

  랑다르마가 티베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원한의 대상이 된 까닭은 그가 토번의 마지막 찬보라서기 보다도 그가 행한 '폐불' 정책때문이었다. 본교를 숭상했고 본교 파 대신들과 승려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한 그가 폐불 정책을 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폐불 정책은 티베트 인들이 치를 떨 정도로 무자비한 것이었는데, 당시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였던 죠캉사원과 사미예 사원을 폐쇠하고 죠캉 사원은 외양간으로 고쳤는데 랑다르마의 별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원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불상을 강물에 빠뜨렸으며 불교도를 강제 개종 시키거나 개종을 거부하면 학살하였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당에서도 무종 황제에 의해 '회창폐불'이 단행되면서 불교가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 랄룽 팔기 도르제의 랑다르마 암살도(<티베트 1만년의 역사> 중에서)

  랑다르마의 가혹한 폐불정책은 당연히 불교도들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랑다르마는 842년 독실한 불교도였던 랄룽 팔기 도르제에 의해 암살당했다. 티베트 전승에 의하면, 랄룽 팔기 도르제는 동굴에서 "랑다르마를 계속 나두게 되면 이 세계가 암흑천지가 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라싸에 가서 랑다르마를 활로 쏘아 죽였다. 사실상 마지막 찬보인 랑다르마가 암살 당하면서 토번의 찬보 제국은 종결이 되고 분열의 시기를 맞는다.


△ 랑다르마의 두 아들인 오슝과 윰텐

  랑다르마에게는 두 왕비가 있었고 랑다르마가 암살될 당시에 둘째 왕비가 아들을 임신 중이었는데 랑다르마가 죽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오숭을 나았다. 그런데 랑다르마가 생존해 있을 때 자식이 없어 자신의 권력을 둘째 왕비에게 강탈당할 것을 두려워한 첫째 왕비가 그녀의 조카(혹은 거지의 아들) 윰텐을 자신의 아이라고 속이고 그를 왕자라고 주장하였다. 대신들은 첫째 왕비의 농간을 눈치챘지만 당시 첫째 왕비의 외척 가문이 권력에 정점에 서있었기 때문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다. 랑다르마 시기의 정치 상황을 볼 때 첫째 왕비와 윰텐 측은 본교 파였고 둘째 왕비와 오숭 측은 불교 파였을 가능성이 높다.

  랑다르마가 암살되자 오숭이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찬보에 즉위하였다. 하지만 윰텐을 지지하던 귀족들은 오숭의 즉위에 불복하여 윰텐을 따로 왕으로 옹립하면서 토번 왕조는 점차 분열되었다. 대체로 오숭의 일파는 초기에는 야룽 계곡을 중심으로 라싸의 윰텐 측과 패권을 다투다가 서부의 아리 지역으로 건너가서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오숭과 윰텐의 왕위 쟁탈전을 계기로 티베트는 분열의 시기를 맞게 되었고 게다가 849년부터 약 20년 간 일어난 평민 폭동으로 인해 토번제국은 완전히 붕괴되기에 이른다.

  티베트의 사료와 전승에 의하면 평민 폭동은 독실한 불교도 대신이었던 팔케 욘텐이 본교파 신하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여 원귀가 되면서 티베트 농민들을 선동했다고도 하고, 얄룽 계곡의 토호가 평민들을 강제로 저수지 공사에 동원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결국 이 두 이야기 모두 토번의 평민 폭동이 본교-불교 갈등 등으로 인한 토번 지도층의 붕괴와 평민에 대한 토번 지도층의 과도한 착취 등이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평민들은 토번의 봉건 귀족들로 인해서 억압을 받은데다가 치축데첸과 랑다르마가 각각 불교와 본교 승려들을 우대하면서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 오숭의 후손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구게왕국 유적

  869년 라싸 주변에서 일어난 대폭동은 결정적으로 티베트 최초의 통일제국 토번제국을 와해시켰다. 평민 반란군은 877년 토번 제국의 왕릉들을 약탈하기 시작하였고 송첸캄포의 능을 제외한 찬보의 능들은 훼손되었다. 토번제국이 와해되면서 티베트 각지에서는 봉건 귀족들과 불교 종파의 승려들이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분립하기 시작하였다. 토번 제국의 왕족들도  각기의 세력으로 분립했는데, 한국인에게 <차마고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차마고도의 서쪽 종착점으로도 잘 알려진 구게왕국도 랑다르마의 아들 오숭의 후손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럼 티베트 최초의 통일제국이자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토번 제국이 붕괴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국가가 몰락하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얽혀다. 토번 역시 건국 이후부터 자체적 모순들이 내재되어 있었고 그러한 모순들이 축적되다가 곪아터지면서 몰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토번제국은 시작부터가 부족 연맹체제였다. 비록 송첸캄포 이후 티베트 지역의 여러 부족을 병합하면서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부족들의 군장들은 제국의 귀족으로 자신들의 영지를 바탕으로 찬보의 중앙집권화에 반발하면서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다. 찬보들은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결과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랑다르마가 암살되어 제국의 중추가 무너지자 제국으로 묶인 귀족들은 각자의 세력으로 분립한 것이다.

  이러한 제국의 분열은 종교에 의해 가열되었다. 토번 제국 이전의 부족들은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본교를 믿고 있었으나 제국이 성립되면서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들어와서 본교의 위치를 위협하였다. 그러면서 본-불 간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이러한 종교 갈등은 찬보와 귀족, 혹은 귀족들 간의 정치투쟁과 얽히면서 제국의 분열에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 한 것은 제국의 통합을 위해 들여온 불교가 제국이 붕괴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티베트 자체의 독자적인 색체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티베트의 지형 자체가 제국의 통합을 가로막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어쩌면 위의 두 가지 원인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역사에 있어서 지리적 요건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티베트의 지형 역시 티베트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티베트는 기본적으로 3~4000m의 험준한 고원, 산악지대라서 사람들은 분산되어 제한된 곳에 거주할 수 밖에 없다.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구성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건은 중앙의 명령이 지방에 잘 하달될 수 있는 교통, 통신이 잘 발달되어야 하는데, 티베트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지역 간의 왕래가 불편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티베트의 지리적 요인이 제국의 통합을 저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pilogue


 


  지금까지 티베트 최초이자 마지막 제국인 토번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토번제국은 7세기 초 무렵, 티베트 고원을 최초로 통일하고 본격적으로 역사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후, 당 제국과 돌궐-위구르, 남조, 멀게는 서쪽의 압바스 왕조와 동, 중앙아시아 사회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토번제국이 번영한 것은 2세기 남짓한 기간으로 그 후 오랜 기간 분열되는 상태가 되지만 티베트 역사와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티베트 전 역사를 통틀어서, 토번제국은 티베트 인들이 이룩한 최초이자 마지막인 통일제국이었다. 어떠한 집단에 있어서 단결되고 어떤 조직을 만든 기억은 그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토번 역시 티베트 인들에게 최초로 통일국가를 건설한 경험을 제공하였고, 이는 티베트 인들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더군다나 토번 제국 시대 창제된 티베트 문자, 산스크리트 어-티베트어 표준사전 등의 문화적 유산은 티베트 인들의 정체성 형성의 중요 요인이었다. 무엇보다도 토번제국 시기 유입된 불교는 비록 제국이 존속할 당시에는 본교와 갈등을 야기했지만 제국이 붕괴된 이후, 티베트 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 전역의 역사에서 토번은 중요한 일원이었다. 토번의 계속된 확장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토번의 대비천 전투 승리로 요동지역에서 당의 세력이 후퇴하여 발해가 확장하기도 하였고, 토번의 하서 점령을 계기로 마치 원수 같았던 당과 위구르가 비교적 끈끈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토번을 견제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토번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한 축이자 변화의 블랙홀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토번에 대한 연구와 관심, 특히 한국에서의 관심은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필자는 <차마고도>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구게왕국을 보고 신비감에 사로잡힌 기억이 있다. 어쩌면 토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러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새어나가는 이야기이지만 중국의 동북공정도 티베트 역사에 대한 중국의 서장공정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한국에서도 토번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結>


참고문헌

1. 1차 사료 및 2차 사료

<舊唐書>, 漢語大詞典出版社, 上海, 2004.
 온라인:
http://www.guoxue.com/shibu/24shi/oldtangsu/jtsml.htm
<新唐書>, 漢語大詞典出版社, 上海, 2004.
 온라인:
http://www.guoxue.com/shibu/24shi/newtangsu/lianshu.htm
<通典>,  新興書局,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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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행본

김규현, <바람의 땅 티베트1: 당번고도를 따라서>, 실크로드 문화센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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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松久男 等, 이평래 역,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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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토 출판부, 박철현 역, <티베트, 1만년의 이야기>, 새물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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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Peers, 황보종우 역, <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수막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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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키피디아 자료

Bon religion:
http://en.wikipedia.org/wiki/B%C3%B6n
List of emperors of Tibet: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emperors_of_Tibet
(중문: http://zh.wikipedia.org/wiki/%E8%B5%9E%E6%99%AE)
Old Tibetan Chronicle:
http://en.wikipedia.org/wiki/Old_Tibetan_Chronicle
Padmasambhava: http://en.wikipedia.org/wiki/Padmasambhava
Sumpa: http://en.wikipedia.org/wiki/Sumpa
Tibetan Annals: http://en.wikipedia.org/wiki/Tibetan_Annals
Tibetan Empire: http://en.wikipedia.org/wiki/Tibetan_empire
Zhangzhung: http://en.wikipedia.org/wiki/Zhangzhung


포스팅 후기

  드디어 토번제국에 대한 연재글을 끝냈습니다. 한편으로는 큰 짐을 덜었다는 느낌과 한편으로는 짠한 아쉬움이 여운을 남깁니다. 이 글을 쓴 계기는 화번공주에 관련된 글에 대해서 한 블로거 분이 제게 문성공주에 대해 언급한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제가 너무 일을 크게 벌여놨구나라는 후회가 들 정도로 커졌습니다.

  토번제국에 대해서 처음으로 글을 써본 것이기 때문에 여러군데 빼먹은 부분도 많고 사료 접근에 있어서도 부족한 부분이 매우 많았다는 점 통감합니다. 특히 <자치통감> 완역본을 두고서도 저의 귀차니즘과 게으름으로 인해 참고하지 못한 점 반성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료 접근과 해독 면에서 진한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이번 글을 쓰면서 저 역시 많은 점을 배워서 뿌듯합니다. 또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이글루스 내에서라도 티베트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후기를 빌어 몇몇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선 제 글을 애정어린 시각으로 봐주시고 중국 사료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시는 들꽃향기 님과 소하 님, 또한 티베트 고대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시는 유유자적 님과 여소제 님(제가 여소제님 댓글을 모두 봤는데, 죄송스럽게도 답글 달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먼 곳에서 저의 글을 항상 응원하시는 고리아이 님, 또한 제가 항상 학문적으로 부럽게 여기고 저를 이글루스로 인도해 주신 Mr. 스노우 형, 그리고 저의 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 주신 이글루스 유저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족하고 지겨운 글 읽어주셔서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11/03/08 01:27 # 답글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 첫걸음 2011/03/09 07:24 #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소하 2011/03/08 01:48 # 답글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계급투쟁은 계급이 생겨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인류의 난제 같습니다.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나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면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
  • 첫걸음 2011/03/09 07:31 #

    저는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집단을 이루면서부터 이미 상하질서가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건 어쩌면 동물의 세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이지만 다만 인간은 그 상하질서라는 것을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시스템 화 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어쩌면 인간 역사에서 계급이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 한단인 2011/03/08 03:50 # 답글

    에필로그까지 완결성 있게 잘 구성된 연재인 거 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첫걸음 2011/03/09 07:57 #

    한단인 님께도 감사합니다. 특히 모병제 부분 관련해서는 한단인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배웠습니다. ^^
  • 앨런비 2011/03/08 08:12 # 답글

    수고하셨습니다아아.
  • 첫걸음 2011/03/09 07:31 #

    고맙습니다아 ~~~~~~^^
  • 2011/03/08 08: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첫걸음 2011/03/09 07:37 #

    제가 이글루스 활동에도 지치는데..... ㅋㅋㅋㅋ 그리고 제가 카페 활동은 성실히 못 하는 타입이라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ㅠㅠ
  • 앨런비 2011/03/09 09:08 #

    글을 컨트롤 씨 브이 하시면 됩니다 아하하하(....) 여하튼 선전을 위해 주소
    http://cafe.naver.com/historygall
    뭐 제가 허락받고 퍼가면 간단하겠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저작권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지라(....)
  • 맹꽁이서당 2011/03/08 10:35 # 답글

    저 암살 그림은 무척 리얼(?)하네요. ㅎㄷㄷ
    긴 연재 수고하셨습니다 ^^
  • 첫걸음 2011/03/09 07:40 #

    <티베트 1만년의 역사>의 책이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정리가 잘되어 있고 귀한 그림이 많습니다. 마치 콤모두스가 레슬링 코치에게 당한 것처럼 랄파첸도 레슬링 기술처럼 당하는 군요 ㅠㅠ
  • 들꽃향기 2011/03/08 11:39 # 답글

    1. 개인적으로는 사실 장경회맹 전후의 티벳정세를 잘 몰랐었습니다. 때문에 우-이당쟁에서 維州의 반환문제를 두고 벌어진 우승유와 이덕유의 논쟁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예전의 저의 경우는, 토번과의 관계에서 화호를 지속할 수 있다고 보고 유주 하나로 화호를 깰 수 없다는 우승유의 주장을 '현실주의적'이라고 파악한 일부 선생님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견으로는 "토번측이 마음만 먹으면 깨질 수 있는 것이 화호관계인데, 일단 요충지 하나라도 더 확보하여 유리한 실마리를 열자는 이덕유의 주장이 더 현실적인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으니깐요. (....)

    그런데 이미 장경회맹 당시부터 토번제국이 위구르 제국과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었고 국력도 예전같지 않다는 내용제기를 해주신 것을 보고서, 결국 우승유의 주장도 토번의 입장을 생각하면 '토번-당간의 화호가 계속될 수 있다고 파악할 만했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면에서 우승유의 주장에 '현실주의적'이라는 성격부여를 하셨던 몇몇 선학들의 논조를 이해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중국사 아니 한쪽의 역사만 보고 백날 붙드는 것의 폐단이 어떠한지를 오늘의 글에서 하나 더 깨우치게 되네요.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


    2. 결국 수당시기에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했던 국가들이 부딪쳤던 문제인, 귀족세력의 내부투쟁과 빈부격차의 심화라는 문제가 왕조멸망에 작용하게 되는 것이 토번의 역사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흥미롭기 그지 없네요.


    3. 치축데첸의 목을 꺾은 귀족은 후생에 스티븐 시걸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하는데....(도주)


    혓바닥이 지나치게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ㅡㅜ 그간 쓰신 연재글 덕분에 진심으로 배운 바가 많았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유유자적 2011/03/08 22:18 #

    ㅇㅅㅇ 우승유의 말중 '토번이 마음만 먹으면 3일 안에 함양교를 침공하고 그렇게 되면 그 손실은 유주 백개와도 비할바가 아니다.'라는말이있습죠, 그리고 토번은 내분으로 몰락한거지 국력의 좆망으로 따지면당이 종결입니다. 위구르 역시 805년에 보의가한이 즉위하면서 그나마 나아졌지. 키르기즈 하나 감당못해서 토번 견제도 못하고 압바스는 토번하고 목숨걸고 싸울일도없고... 토번의 최대 실책은 왕권강화의 미완이지 국력의 약화는 아닙니다.
  • 첫걸음 2011/03/09 07:52 #

    1. 저도 역사란 것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봐야한다는데에는 매우 동감합니다. 인간사가 오직 한가지 원인으로만 일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진짜 극단적으로 크게 양분한다면 내적원인과 외적원인으로도 나눌 수 있고요.

    2. 참으로 기가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신기한 것이 당과 그 주변 국가들이 동시에 비슷한 패턴으로 무너졌다는 거죠. 당은 회창폐불- 황소의 난- 주전충 찬탈로 오대 십국으로 분열하고 신라는 진골귀족 다툼- 적고적 등 농민반란-호족들 세력 분할, 토번은 랑다르마 폐불- 왕위 계승 전쟁- 농민반란- 분열, 위구르는 키르기즈 침입, 발해는 거란 침입 등으로 분열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라는 것이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듯하기도 합니다.
  • 들꽃향기 2011/03/09 13:39 #

    유유자적님// 말씀대로 우승유의 논의 중에서 '토번의 찬보가 여천(茹川)에서 말을 먹이고 있으니,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3일 내로 함양교에 이를 것이고, 경사의 자제를 뽑아 이를 막는다고 소요를 벌일 것이다.'라는 말도 있죠.

    그런데 저는 국력을 단순히 한 나라의 경제력, 인구 등에 국한짓지 않고, 그런 것을 자신들의 체제가 발휘할 수 있는 힘으로 뽑아내는 시스템의 역량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국가가 시스템적으로 예전에 비해 문제가 생기면서 그것을 자국의 힘으로 최대한 뽑아내는 여력이 예전만큼 못함으로서 그것이 실제적인 힘의 발휘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것이 국내정치의 안정과 대외군사력의 문제로 이어진다면 그것을 '국력의 약화'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력의 약화'라는 의미를 쓴 것이고, 이것은 토번뿐만 아니라 당을 바라보는 시선, 나아가 타 시대 타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승유의 주장을 '현실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국제정세 못지 않게 당 역시 말쓰하신 좆망한 상황. 즉 토번의 사정을 이용해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치기보다는 그 시간에 자기네 내부를 정비하는게 더 다급했던 것이 '현실'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제가 '국력의 약화'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 생각은 이렇다 하면서 남에게 이해해주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는 양해 정도는 구하고 이도 적합하거나 타당한 개념이 아니라 생각하면 질정의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 유유자적 2011/03/09 22:12 #

    그런 국력조차 감안해도 안사이후의 동아시아 최대강국은 토번이라는게 제 주생각입니다. 어찌보면 건방져보이는 생각이지만 일단 제도 자체가 최초의 정복왕조인 요가 출현하지 이전에는 제일 완벽한(정주국가인 신라,발해 제외)제도를 양성했으며 그 강력한 틀은 제국멸망이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이미 그 국력은 당을 압도합니다. 실상 토번이 작정하고 20만(마음만 먹는다면 이정도는 껌이죠. ㅇㅅㅇ 물론 치데송첸 이후로는 약간 무리니..)몰아서 장안 휘모리 장단으로 점거하고 장기간 개기면 그냥 당나라 gg인데 말이죠.(참고로 토번의 전성기 동원군사력은 50만안팎로 추측됩니다.)


    제 생각은 이러하긴했지만 들꽃향기님의 말을 들으면서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고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날카로운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1/03/10 13:13 #

    첫걸음//

    토번-唐-발해-신라 모두가 9세기 중반 이후 말기적 증상을 겪었지만, 일본에서는 도리어 후지와라 정권이 그 기반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었죠. 이후의 역사를 보더라도, 대륙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자연적인 국경'에 둘러싸여 외부로부터 상대적으로 단절되었던 점이, 일본사가 기존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 고리아이 2011/03/08 11:52 # 답글

    그 동안 애를 많이 쓰신 흔적이 곳곳에
    추억의 돌들처럼 박혀있네영^___^))
  • 첫걸음 2011/03/09 07:55 #

    어쩌면 이런 글들이 나중에 마치 손발의 굳은살처럼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 고리아이 2011/03/09 13:16 #

    아마도
    그것이 공부하는 맛
    아닐까영^___^))
  • 칼슈레이 2011/03/08 13:36 # 답글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첫걸음님의 논문에 필적하는 글들을 읽으며 좋은 정보 얻어가고있어요~ 건필하세요^^
  • 첫걸음 2011/03/09 07:59 #

    칼슈레이 님께서 그렇게 칭찬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유유자적 2011/03/08 22:15 # 답글

    티벳의 문화의 첫문장이 생각하는군요. 미지의 세계(맞나?)에 대해서 글을 쓰는것은 야심차면서도 무모한 시도다. 참 마지막 글을 읽으면서 딱 맞는말이라고 생각하네요. 오늘날 국내에 소개된 17c이전의 티벳사,특히 토번제국은 상대적으로 자료가 많지만(고로 우리는 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 소장님이신 김규현 선생님을 존경해야합니다.) 적는것으 거의 없는데 이 와중에 이글루스의 이글은 분명 고대 티벳사 연구에 엄청난 발전(오버드립)이 되었을겁니다. 수많은 자료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개념글 부탁(이것은 주워먹기?)


    그런데 다음 역사글 떡밥은 있으신지? 아니면 개강이니 한동안 휴강?



    근데 티랄파첸은 법명(法名)이 랄파첸이지 본명이 랄파첸이 아니...
  • 첫걸음 2011/03/09 08:12 #

    한국에서 티베트 역사에 정통하신 분이 김규현 선생님과 감한규 선생님, 김호동 선생님이신 것 같은데 국내에서 아직까지 제대로 연구가 활성화가 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김규현 선생님의 <티베트 역사산책>은 참고하려고 교보와 반디 등지에서 봤는데 절판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책이 있었더라면 명확히 흐름을 파악할텐데.............그리고 블로그란 것이 책, 논문보다 가볍기는 하지만, 토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였으면 좋겠네요. ^^ 그동안 진정 감사합니다 유유자적 님.

    랄파첸이 개인이름이 아니군요. 법명이었군요. 근데 흔히 랄파첸, 랄파첸해서 본명처럼 여겨지게 되는군요.

    당분간 연재글은 쓰기 어렵겠죠. 몇 개 짧은 글의 소재를 찾아 그것과 <초보일기>를 쓰면서 지내고자 합니다.
  • 2011/03/09 09: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여소제 2011/03/09 19:12 # 답글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제가 『토번 제국사(吐蕃帝國史)』라고 해서 토번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만 이미지를 찾지 못하여(못하여가 아니라 솔직히 말해 귀차니즘) 제 글에 첫걸음님이 사용하시는 이미지를 넣고자 하는데 괜찮을 런지요?

    (토번제국사는 2008년쯤 연재를 시작했는데 귀차니즘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송첸캄포를 다루고 있는 안습한 연재물)
  • 첫걸음 2011/03/09 21:05 #

    저도 어차피 인터넷에서 찾고 찾은 것이기 때문에 쓰시고 싶으면 얼마든지 쓰시면 좋겠습니다. 저보다 더 나으신 글을 쓰시리라 믿습니다.
  • 2011/03/10 13:2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첫걸음 2011/03/11 09:23 #

    아.... 저의 부족한 글솜씨에 칭찬해 주셔서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데로 쓸 뿐입니다. 하하. 하지만 역사가에게 중요한 것은 문체보다도 사료를 보는 통찰력이라고 생각되는데, 아직 그것이 부족하여 걱정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5/12 14:17 # 답글

    정말 잘 봤습니다. 저는 처음에 첫걸음님이 여소제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인터넷에 토번 관련 글이 그만큼 적다는 데에 기인한 것이겠죠).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네요. 그나저나 참고문헌에 제시한 중국측 문헌 검색싸이트는 참 좋네요.

    좋은 걸 또 하나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
  • 첫걸음 2011/05/12 23:59 #

    여소제님처럼 뛰어나신 분을 저같은 사람과 비교하시면 안됩니다. ^^
    그 분에 비하면 저는 너무 부족합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5/13 09:29 #

    제가 볼때는 다 대단한 분이신데요~~^^
  • 청순한 얼음의신 2015/01/20 15:29 # 답글

    황'소'의 난, '랑'다르마^^
    소의 연결점이 있어서 기억이 오래 남을것같아요.
    고생많이 하셨고 정말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바람 2018/03/24 11:20 # 삭제 답글

    산타락시타를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되었는데,
    왜 그렇게 랑다르마는 불교에 대한 과한 반감이 있었나 했던
    이전의 의문들에까지 이해를 넓혔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수희탄찬합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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