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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당 태종을 박제화 시키다. 동아시아사

   
△ 드라마 <정관의 치>의 이세민으로 분한 마약 


  요즘 인터넷으로 <정관의 치(貞觀之治)>라는 중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중이다. 당이 하북의 두건덕과 왕세충을 격파하고 중원을 차지하는 낙양, 무뢰관(<삼국지연의>의 호뢰관) 전투에서부터 이세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 태종의 인생을 그려낸 드라마이다. 아직 절반 부분 밖에 보지 못했는데, 뒤에 고구려 원정도 다룬다고 하니, 어떻게 묘사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약간은 뒤죽박죽한 면이 있어서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당 태종을 연기하는 마약이나 장손 황후를 연기하는 묘포의 연기는 훌륭한 듯하다. <대청풍운>에서도 느끼는 점이지만 캐스팅이나 스케일 면에서 중국 사극의 수준이 점점 진보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정관의 치>에 몰입하면서, 당 태종 이세민에 대해서도 사학도로써 한번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하였고, 그와 동시에 당 태종의 정치를 다룬 <정관정요>라는 책에도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 보았다. 물론 당 태종 시대를 다룬 역사책은 정사인 <구당서>, <신당서>와 <자치통감>도 있지만 우리에게 아무래도 당 태종 시대를 잘 대변해준다고 인식된 책은 오긍이 지은 <정관정요>이라고 할 수 있다. '정관 시대의 정치의 요점'이라는 의미에 명실상부한 책일 것이다.

  <정관정요>는 중국사상 명군이라고 꼽히는 당 태종의 정치를 다룬 책인 만큼, 현재까지 동아시아의 지도자, CEO들이 읽어야 할 제왕학의 지침서로 꼽히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정관정요>가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고려 광종이 즉위한 이후 7년동안 <정관정요>를 열독했다고 하기도 하고 대한민국 대통령 중 어떤 분들과 일부 유명 기업 CEO 분들은 책장에 끼어 놓고 즐겨 읽었다고 하기도 한다. 다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정관정요>가 동아시아의 제왕학 교과서로 아직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정관정요>가 과연 '역사서'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정관정요>의 내용이 100%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정관정요>의 내용이 <구당서>와 <신당서>, 혹은 <자치통감>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도 많다. 또한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역사서의 기능은 <자치통감>처럼 '통치의 거울'이라는 점도 안고 있기 때문에 '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관정요>는 '역사학'적으로는 비판적으로 수용되어야 할 점이 있고 그 내용도 100% 진실된 당 태종 시대의 역사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정관정요>가 집필된 시기부터 보자. <정관정요>는 측천무후 사후, 당나라 중종 대에 오긍이 저술하여 황제에게 올려졌고, 이후 현종 초에 다시 황제에게 올려졌다. 오긍은 사관으로 하남 개봉 사람으로 당 고종 총장 3년인 670년에 태어나 당 현종 천보 8년인 749년에 사망하였다. 물론 그는 사관이었기 때문에 조정의 상소문, 일지, 조령 등을 쉽게 접할 수 있었겠지만 그 자신이 태종 시대를 경험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당 태종 시대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는 무주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측천무후(고우영 화백 作)

  오긍이 살았던 무주 시대는 '혁명'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당나라 역사에서 정치가 급변한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이씨가 세운 당 왕조가 일시적으로 무너지고 중국 최초로 여성이 황제가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오긍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측천무후가 황제가 된 후 현종이 즉위할 때까지의 정치적 상황은 '여화(女禍)'라고 부를 정도로 정치적으로 왜곡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측천무후와 중종의 부인 위황후가 집권하면서 '혹리'들을 앞세운 공포정치와 대대적인 정치 투쟁이 벌어진 것을 목도한 오긍으로써는 무주 이전의 태종의 치세가 '태평성대'로 여겨졌을 것이고 따라서 <정관정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정관 시대로의 회귀'였음은 자명하다.


△ 당 태종 어진

△ 신료들과 회의하는 이세민(드라마 <정관의 치>)
 

  따라서 <정관정요>는 무주시대의 정치와 대비되는, 당 왕조가 회복해야 할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한 이상정치의 정점이자 구현자는 다름 아닌 당 태종 이세민이다. <정관정요>는 비록 역사 속에 실존한 인물들과 그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저술되었지만, 그 속에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실제 정관 시대의 현실이라기보다는 오긍이라는 역사가의 이상이 투영된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정관정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당 태종은 '성군(聖君)' 그 자체이다. 비록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신하들의 간언을 스스로 구하고 그 간언을 기꺼이 수용하는 '하해'와 같은 마음을 지닌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정관정요>의 이세민을 통해 오긍은 군주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정관정요>에 등장한 이세민의 모습은 '역사적 인간' 이세민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오긍에 의해 '박제' 혹은 '대리석화'된 이세민의 모습인 것이다. 



  사실 흔히 동아시아 인들에게 당 태종 시대의 정치를 몇 안되는 '명군의 치세'라고 인식되지만, 역사가들은 당 태종 시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태종의 치세는 당의 여러 제도가 정비되는 중요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태평성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인구나 국력 면에서 당은 여전히 수 왕조의 그것을 넘지 못했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동돌궐의 힐리가한을 굴복시키고 타림분지의 고창왕국을 복속시켰으나, 티베트 고원을 통일한 토번 제국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야 했고 말년에는 고구려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대외원정으로 민생이 불안정 해진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당 태종의 시기가 명군의 시대로 꼽히는 까닭은 전 시대인 수양제 시기의 그림자가 워낙 어둡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우 빛나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관정요>라는 '역사서'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통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정관정요>의 사료적 가치도 있다. 정관 시대의 위징을 비롯한 신하들의 상소문들과 발언 내용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당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태종과 각 신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정관정요>가 당 태종 시대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료라는 점은 다소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추신: 개인적으로 장손황후 같은 아내를 얻고 싶다는.........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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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맹꽁이서당 2011/03/17 23:54 # 답글

    말씀을 듣고보니, 세종대왕 때도 북방 사민, 강제적인 통화정책, 명나라 사신의 과도한 접대 등으로 민생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내용이 생각나네요. 이번 편도 잘 읽었습니다. ^^
  • 첫걸음 2011/03/18 00:01 #

    저도 동의합니다. 세종대왕도 그렇고 이세민도 그렇고 상대적으로 다른 군주들보다 지도력이 뛰어났던 군왕들은 맞지만, 그러한 찬사로 인해 어두운 면들이 가려지는 경향이 많습니다.
  • 소하 2011/03/18 00:26 # 답글

    창업기거주를 읽어보면 확 깨죠..ㅋ
  • 첫걸음 2011/03/18 08:26 #

    거품이 낀 인물 중 하나입니다
  • Mr 스노우 2011/03/18 08:28 # 답글

    <정관정요>가 신하들이 보고 싶었던 태종의 모습이었던 것과 동시에, 태종이 신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했겠지요. 뛰어난 군주란 연기력도 탁월해야 하는 법이니...
  • 첫걸음 2011/03/18 08:37 #

    태종이 진정 그랬다면 대단한 인물이기도 한 듯 합니다 ;;;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힘들거든요.
  • asianote 2011/03/18 13:30 # 답글

    뭐 당 태종이 명군이라는 점은 사실이지요. 다만 명군의 속사정을 본다면 과거 시대와 같은 찬사는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 첫걸음 2011/03/18 14:20 #

    옳은 지적입니다. 당 태종이 역대 중국 황제들 중에서 명군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관정요> 등을 통해 지나치게 훌륭한 점만 부각되다 보니 다소 객관화되지 못했다는 거지요. ^^
  • 들꽃향기 2011/03/18 18:20 # 답글

    1.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 당 태종이 걸물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와 현실이란 것이 걸물의 역량에 곧장 좌우되던 시기도 아니었으니깐요.

    개인적으로 돌궐 평정 이후에 봉선을 지내려던 당 태종에게, 위징이 "천하에는 아직 다섯가지의 부족함이 있다."라는 요지로 봉선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었고, 저는 사실 이것이 정관시대의 실질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2. 정관정요 저자로서의 오긍의 현실인식이 텍스트내에 작용한 것이라는 지적은 적절한 말씀을 해주셨다고 봅니다. 특히 이런 양상은 비단 오긍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계승한 개원시기의 지식인-관료집단들이 '대당육전', '대당례' 등의 제정을 통해서, 무주시대 이후로 사회-경제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관시대를 고집스럽게 이상향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에서도, 비단 오긍뿐만이 아닌 당시의 '시대정신'의 투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ㄷㄷ

    다만 개인적으로는 더 주목하는 것이, 신채식 선생님이 지적하셨듯 후대의 평가에서까지 『정관정요』를 바탕으로 하는 정관치지의 모습이 부각된 것은, 재미있게도 시대는 물론 사회 자체가 변해버린 송대에 들어와서였다고 봅니다. 특히 구양수 등의 주된 문인들이 당과 송을 연속된 시대로 파악하면서, 당을 정치적으로 이상화하고, 나아가서 그렇게 '이상화 된 당의 모습'으로 자신의 나라인 송을 되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투여했었으니깐요. ㄷㄷ
  • 첫걸음 2011/03/18 20:15 #

    들꽃향기 님의 혜안에 감사드립니다. ^^

    1. 저도 위징의 상소문에 나온 내용이 정관 시대의 한계점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 상소문이 <정관정요>에도 실렸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다고 생각합니다.;;

    2. 무주시대는 당나라 사상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당나라 건국집단이었던 관롱집단이 몰락하고 산동 세력이 정권을 쥐는 계기가 되었고 제도적으로도 부병제가 서서히 몰락하는 등 당 태종이 구축한 체제들이 점차 변화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주시대 이후 정권을 잡은 관료들이 무주시대의 변화들을 무시하고 당 태종 시대 체제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현실과 괴리가 생겼고 결국 이러한 것이 커지면서 안사의 난 이후 당 왕조의 체제가 붕괴되는 한 계기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3. 송대에까지 당 태종이 각광받는 것은 아마 송대의 사대부들에게 당 태종의 정치가 매우 이상적인 왕도 정치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당대보다 송대에는 황제의 독재권이 강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송의 사대부들에게 신료들의 언로를 튼 당 태종이 이상적인 군주로 인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유유자적 2011/03/18 20:27 # 답글

    현실은 그저 조선시대 신하들의 변명서 스테디셀러들중하나. (책으로 출판된 정관의지치도 읽을만하지는 않더군요. 역시 무주의 치세가좀 짱인듯?)
  • 첫걸음 2011/03/18 20:38 #

    ㅋㅋㅋㅋ 맞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사대부들이 많이 인용했죠. 다만 현무문의 변이나 그런 것은 비판적으로 인식하지만 당 태종의 정치 태도는 송이나 조선의 사대부들이 꼽은 이상적인 정치 형태였던 것이죠 ㅋ 만약 무측천이 남성이었다면 평가는 어떻게 내렸을까 궁금합니다. 물론 정치적 분쟁은 있었지만 상당한 안정기였죠.
  • 고리아이 2011/03/19 14:00 #

    그러고 보니 조선 사대부들의 <정관정요에 대한 이해>랄까
    논문 테마로도 손색이 없겠는 걸요
  • 루필淚苾 2011/04/15 18:03 # 답글

    태종 이세민은 청나라의 강희제와 더불어 최고 명군이라고 꼽히는 인물이지만 현무문의 변으로 등극한 것도 그렇고, 여러 사료에서 미화된 것도 그렇고 좀더 냉정하게 볼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세민을 다룬 드라마로는 <정관의 치>외에도 <진왕 이세민>, <정관장가> 등이 있네요.
    장손황후는 명나라의 마황후와 더불어 어질고 현명한 황후로 꼽히는 인물이더군요. ^^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적절히 남편의 정치를 보좌했으니 측천무후와는 다른 의미로 여걸이라 할 수 있겠죠. 혹자는 가장 완벽한 황후라고 평하기도 하던데 남편과 아내가 당대나 지금이나 모두 칭송을 받으니 참 보기 드문 부부인 듯...
  • 황룡 2011/11/12 20:54 # 삭제 답글

    결국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근거와 증거도 없으면서 심증만으로 정관의치 과장? 허참 웃기네 ㅋㅋㅋ
    정관정요가 뭐가 과장이 심하다는거냐? 니 혼자 망상 추측에 불과한데 그걸 동의하는 이글루스새끼들도 이해가 안되네? 이거 완전 환빠급 중까,토번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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