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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는 공적인기록인가? 개인의 저작인가? History? 歷史?


  <사기>를 읽고 공부하면서 항상 의문이 드는 점이 있어서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일종의 화두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사기>는 중국 왕조의 첫번째 정사(正史)입니다. 정사라는 것은 공인된 사서이죠. 하지만 <사기>가 과연 왕조의 공적(公的)인 기록인지, 아니면 사마담, 사마천 부자 개인의 저작인지 그 성격에 다소 의문이 듭니다. 과연 <사기>는 공적인(official) 역사서일까요? 아니면 개인이 지은 사적인(private)  역사서일까요?

  제 개인적인 의견은 이러합니다.

  물론 사마담과 사마천은 역사를 관장하는 "태사공"이라는 관직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분으로 볼 때는 <사기>라는 것은 공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태사공"이라는 직책은 역사 기록을 관장하는 역할이었지, 왕조의 역사를 편찬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마천이 <사기>라는 사서를 쓴 것은 "태사공"이라는 공적인 관리의 임무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사관으로써의 개인적인 사명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기>가 국가 주도 하에서 나온 공적인 사서였다면 역사서를 만들라는 무제의 공식적인 어명이 있어야 하지만, 어느 기록에서도 그러한 기록은 없습니다. 즉, <사기>라는 역사서를 지은 주체는 국가라기 보다는 사마담, 혹은 사마천이라는 '개인'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사기>에는 한 왕조의 공식적인 시각이 아닌, 사마담, 혹은 사마천 개인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사마천이 살았던 무제 시기는 유가 학문이 국가의 공식적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법가적인 정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태사공자서> 등 기록 곳곳을 살펴보면 유가나 법가보다는 도가, 혹은 황로도에 대한 호평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마천 부자의 사상적 경향이 도가에 경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고조의 라이벌이었던 항우, 여성인 여태후의 기록을제왕의 기록인 <본기>로 분류한 것은 <사기>가 한 왕조의 공식적 역사서라기 보다는 사마천 개인의 사적인 역사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의견은 물론 <사기>라는 역사서가 중화왕조의 공인된 '정사'로 인정되지만, 그것은 한 왕조의 공식적 역사서, 즉 관찬 역사서가 아닌 사마담, 사마천 부자 개인의 사적인 저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기>는 '공적으로 인정된 개인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죠?


  역사학도로써 이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이글루스 블로거 여러분들의 혜안과 고견을 감히 바랍니다. 덧글이나 트랙백으로 의견을 개진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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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문을 원망하지도 이익을 바라지도 마라 2011/03/23 00:49 #

    &lt;사기(史記)&gt;는 공적인기록인가? 개인의 저작인가? &lt;사기&gt;가 사찬 사서임을 의심할 바가 없는 것 같다. 후대에 편찬된 사서가 관찬으로 넘어가면서 작품성은 끝도 없이 추락해 버렸다. 최초의 관찬정사인 &lt;동관한기&gt;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당대에 편찬된 &lt;신진서&gt;도 후대에 난도질 당해버렸다. 명망있는 학자들이 모여서, 또는 이어서 편찬했던 것들이 왜 그러했을까? 답은 아주 쉽다....... more

덧글

  • 슈타인호프 2011/03/23 00:03 # 답글

    저 역시 첫걸음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황제의 지시도 지원도 없었던 책을 관찬 역사서라고 할 수는 없겠죠.
  • 첫걸음 2011/03/23 16:00 #

    만약 관찬사서였다면 <사기>가 그렇게 명작으로 평가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 耿君 2011/03/23 00:17 # 답글

    사기는 사찬 사서로서, 훗날 정사로 인정받은 것이라 보는 게 일반적이겠죠. 여러 중국사학사 서적에서 이미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시면 될겝니다.
  • 고리아이 2011/03/23 13:50 #

    님의 의견대로 사찬이지만, 뒷날 공식화되는 과정을 밟게 되지영^_^))
  • 첫걸음 2011/03/23 16:02 #

    감사합니다. 경군님 ^^ 사실 동아시아 역사적 전통을 보면 조금 기준이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수당 이전까지가 좀 그런거 같군요
  • 맹꽁이서당 2011/03/23 00:22 # 답글

    개인적으론 사실상 분실되었다는 <금상본기>가 정말 궁금합니다. 사마천의 붓길이 당대 황제를 어떻게 해부했을지...
  • 첫걸음 2011/03/23 16:06 #

    사실 <효무본기>에 대한 논란이 많다는 것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평준서>나 <혹리열전> 등만 보더라도 사마천이 무제 시대에 대해서 어떻게 봤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
  • 당나귀형제 2011/03/23 00:27 # 답글

    첫걸음 님 말씀대로 저 역시 관찬 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공적인 성격의 사서'는 아니라 봅니다.
  • 첫걸음 2011/03/23 16:09 #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후대에 공적인 성격이 부여된 사서라고 생각합니다. ^^
  • 한단인 2011/03/23 05:31 # 답글

    음.. 하긴 듣고보니..
  • 첫걸음 2011/03/23 16:10 #

    저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입니다...
  • hyjoon 2011/03/23 10:33 # 답글

    관찬사서는 아니지만, 훗날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정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는 점에서 첫걸음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 첫걸음 2011/03/23 16:12 #

    명쾌한 지적으로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hyjoon 님^^
  • asianote 2011/03/23 12:30 # 답글

    사기는 개인 저작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게 후한대에 이 책을 보는 시선이 생각보다 차갑습니다. 한 무제를 비방하고(자치통감에 나오는 왕윤의 발언) 한나라에 대해 생각보다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보는 시각이 뜻밖에 셌던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기록이 겹칩에도 반고가 다시 한서를 저작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심증이 강하고요. 만약 사람들이 사기를 공적기록으로 보았다면 이런 식의 묘사를 사람들이 의아해하는게 맞는데 그렇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아마 개인기록이 후세에 공인받았기에 이런 묘사가 있는 걸로 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 첫걸음 2011/03/23 16:20 #

    asiannote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물론 한대에 <사기>라는 책이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긴 했지만 한의 공식적 역사서라고 인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시해주신 왕윤의 발언은 <후한서> <채옹전>에도 나오는데, 왕윤이 태사공 사마천을 매우 비난하죠. 그리고 책의 범주도 단대사가 아니라, 오제시대에서부터 한무제 시대를 포괄한 거고 반고가 한서를 다시 지었으니 어떻게 보면 여기에서도 사기가 관찬사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겠군요
  • 만슈타인 2011/03/24 01:00 # 답글

    첫걸음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태사공이어서 자료의 접근성이 편했다고 하나, 국가의 명이기 보다는 고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불굴의 의지로 쓴 거기 때문에 개인기록으로 공인받은 거니까요.
  • 첫걸음 2011/03/25 19:30 #

    늦었지만 만슈타인 님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 그의 불운한 인생 때문에 어쩌면 사기가 더욱 명작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유유자적 2011/03/25 18:26 # 답글

    분명 바탕이 된 사서 자체는 한 왕조의 사서였겠지만 사마천 본인이 예전부터 여행을 하면서 중국 곳곳의 시각이 충분히 사실적으로 반영되고(사기는 그래서 고대치고는 신빙성 떡밥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는..) 지인이나 다른사람의 이야기까지 듣는등 국가 자체가 아닌 '사적인 편찬' 부분도 있었겠지요. 대표적으로 백이 숙제에 '아니 도척같은 도적은 잘 먹고 사는데 백이 숙제는 왜 이모양... 신이 있긴 한건가?'라는 대표적 탄식 떡밥도 나올수있는거겠죠. 하여튼 사기는 '개인적 사서'에 속하나 역사에 이것을 전하는 '공적인' 목표가 있었지요. 즉 공적인 '역사적 사실의 전달'+ 사적인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와 서술'+의 완성판이 사기라고 할수있겠네요. 뭐 그가 고자가 안되었더라도(응?) 충분히 사기는 유명해졌을것같습니다. (아 반고 눈물.. 한서도 충분히 명작인데!!!!!)


    그런데 자치통감은 비교대상에 안들어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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