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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번역] 황청직공도-일본 사료 번역

황청직공도 권1.


일본(日本, 만주어: dzi ben gurun)


△ <황청직공도>의 일본 남녀


일본(日本)은 옛날의 왜노국(倭奴國)으로, 당대에 일본으로 고쳤는데,1 가까운 동해(東海)에서 해가 뜬다고 하여 이름한 것이다. 땅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5기(畿)·7도(道)·3도(島)가 있다. 송대 이전에는 모두 중국과 통하였다. 명의 홍무(洪武) 초기에 자주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쳤으나, 본성이 교활하여, 때때로 연해의 주현(州縣)을 약탈하면서 배반했다가 복종하는 것이 정해진 것이 없었다.2


그 풍속에서는 불교를 숭상하고 무당을 믿으며, 술을 좋아하고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 또한 중국 문자를 익히는데, 그곳 토착 음으로 읽는다. 법을 세운 것이 자못 엄하여 송사를 다투거나 훔치고 도적질하는 일이 드물다. 거처와 음식은 옛 법이 있고, 그 기물은 제조하는 것이 정교하다. 물산 역시 풍부하다. 남자는 정수리를 밀고 맨발이며, 네모난 깃의 옷을 입고 베 허리띠를 묶으며, 출입할 때마다 도검을 찬다. 여자는 머리를 끌어 올려 비녀를 꽂고, 넓은 옷에 긴 치마를 입고 붉은 신발을 신는다. 견포(絹布)를 짤 수 있다.


*각주


1. 일본과 중화왕조가 최초로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서기 3세기 조위(曹魏) 때 왜왕 히미코가 낙랑군을 통해 사절을 보내온 후로, 이후 수대까지 '왜노국(倭奴國)', '왜(倭)'로 불려지다가 당대 이후부터 '일본(日本)'으로 불렸다.


2. 명대 가정년간부터 중국 동남부 해안에서 왜구의 폐해가 극심해졌고, 만력 연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 등이 있었기 때문에, 명과 청의 조정의 일본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청과 일본은 19세기 중엽까지 정식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은 없었고, 나가사키와 절강 해관 등을 통한 통상(通商) 관계를 유지했다.   


덧글

  • 소심한 빙하 2019/08/12 10:25 # 답글

    //일본과 중화왕조가 최초로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서기 3세기 조위(曹魏) 때 왜왕?

    後漢書 光武帝紀
    二年 東夷倭奴國王遣使奉獻

    後漢書 東夷列傳
    建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也。光武賜以印綬。安帝永初元年,倭國王帥升等獻生口百六十人,願請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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